<요한복음 공부 2년맞이 특집>
다시 돌아보는 ‘만남’
요한복음 공부 2년을 맞아 주요 내용들을 간추려 특집으로 엮는다.
이 땅의 모든 동 식물과 자연은 하나의 「만남」이란 원리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접붙임의 진리로 이루어짐을 성서와 과학이 증언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과 선지자가 ‘만남’으로써 이 땅에 하나님의 진리가 전해지게 되었다. 수천 년에 걸쳐 선지자들에게 하나님의 계시(啓示)가 임(臨)하므로 하나님의 뜻이 전해지고 또 전해져서 성서라는 책이 완성된 것이다.
아주 오래 전부터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이 선지자들에게 임하였고, 선지자들은 그 말씀들을 기록으로 남겨 왔는데 그 기록들이 바로 우리가 읽고 보는 성서이다. 이 기록들은 귀중한 하나님의 말씀을 남겨야 한다는 선지자들의 의무감에서 기록된 진리임에 틀림없다.
대표적인 예언서는 이사야서라고 할 수 있는데, 이사야서는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히스기야 시대(時代)에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對)하여 본 이상(異像)이라.”(사1:1)
하나님이 보여주신 이상과 이사야가 ‘만남’으로써 이사야의 영혼이 감응되어 앞날에 대한 언어의 싹이 트고, 그 싹이 살아 숨을 쉼으로 예언의 말이 되어 밖으로 표출하게 되었고, 그 것을 기록한 책이 이사야서이다.
예레미야서도 마찬가지이다. “아몬의 아들 유다 왕(王) 요시야의 다스린 지 십삼 년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였고, 요시야의 아들 유다 왕 여호야김 시대부터 요시야의 아들 유다 왕 시드기야의 제 십일년 말까지 임하니라.∼”(렘1:2,3) 이처럼 수년에 걸쳐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여 예레미야와 ‘만남’으로써 예레미야서가 쓰이게 되었다.
아모스서 또한 마찬가지이다. “드고아 목자 중 아모스가 이스라엘에 대(對)하여 묵시(黙示) 받은 말씀이라.”(암1:1) 여기에서도 여호와의 말씀이 아모스에게 임함을 보는 것이다. 그 말씀이 아모스의 감성과 ‘만남’으로써 무한한 상상력에서 새로운 언어인 예언의 말이 만들어져 표현된 것이다.
이처럼 모든 예언서는 하나님의 말씀과 선지자들의 감성이 ‘만남’으로써 기록되어 성서로 남게 되었다.
증언서도 ‘만남’으로 쓰여졌다
바울은 사회, 과학, 문학, 신학, 철학 등 여러 분야에 밝은 그 시대 최고의 학자요 지식인이었다. 그렇게 높은 지식을 가진 바울이었지만, 그는 예수 사후의 초기 기독자들을 핍박하는 데에 앞장선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다메섹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으로써 사울이었던 사람이 바울이란 이름으로 최고의 증언자로 서게 되는 것이다.
“사울이 행하여 다메섹에 가까이 가더니 흔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저를 둘러 비추는지라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 있어 가라사대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主)여 뉘시오니까?’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네가 일어나 성으로 들어가라.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하시니 같이 가던 사람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하여 말을 못하고 섰더라. 사울이 땅에서 일어나 눈을 떴으나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가서 사흘 동안을 보지 못하고 식음을 전폐 하니라.”(행9:3∼9)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사흘 동안을 보지 못하고 식음을 전폐’한 부분이다.
이 사흘 동안에 사울의 마음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으로 요동치고 있었다. 그리고 새로운 증언의 말들이 생성(生成)되어 전하게 된 것이 바울의 증언서이다.
높은 학문을 가진 바울! 그 학문과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으로 위대한 증언서가 여러 가지의 방향으로 논리화되어 나오게 된 것이다. 신약의 어떤 책도 이 증언서(證言書)를 뛰어 넘는 것이 없다.
통상 사람들은 성서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그 성서 문자만으로는 절대로 하나님의 말씀이 될 수 없다. 성서 말씀과 사람이 ‘만남’으로써 성서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 되고, 성서와 사람이 만남으로 믿음이 생성되는 것이다. 즉, 우리가 성서 안에서 하나님과 ‘만남’으로써 그리스도인으로 생성되어지는 것이다.
창조의 원리는 만남
하나님은 ‘어떻게 사람을 지으셨는가?’
하나님이 하늘과 땅과 바다를 지으시고, 그 위의 생물을 지으실 때 모든 것을 말씀으로 창조를 하셨다. 그러나 오직‘사람’만은 말씀으로 된 것이 아니고 행동으로 지으셨음을 본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창2:7)
말씀처럼‘흙과 생기의 만남으로써 첫 인간인 아담이 창조되었다. 인간창조는 만남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즉, 하나님의 생기와 흙의 만남이 창조의 원리이다. 하와도 만남으로 지음을 받았다. 아담의 갈빗대와 하나님의 생기가 만남으로 하와가 지음을 받은 것이다.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갈빗대를 취(取)하는 순간 하나님과 갈비대의 만남이 이루어진 것이다.(창2:22)
“아담과 하와의 만남”은 생육의 본능이요, 사랑의 만남이다. 서로의 반신(半身)으로의 만남이다. 아담과 하와의 만남은, 피조물과 피조물의 만남이다. 피조물끼리의 첫 만남인 것이다. -요한복음 공부 1과에서-
모든 동, 식물의 생육 번성은 만남
처음 아담 창조의 원리가 자연과 모든 동․식물과 인류의 생육 번성의 원리요, 진리이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과목을 내라 하시매 그대로 되어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서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창1:11,12)
위의 자연 창조의 원리는 「흙과 생기의 만남」이 기본 원리이다. 식물이 꽃을 피우고 향기를 내면 벌․나비가 날아와 꽃의 꿀을 빨면서 몸에 꽃가루를 묻히게 되고, 벌․나비는 다른 꽃으로 가서 꽃가루를 전해줌으로 씨앗을 맺고 생육, 번성하도록 창조 하셨다. 이것들이 다 만남의 원리로 생육하고, 번성한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들은 생물로 번성케 하라. 땅 위, 하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 하시고, ◇하나님이 큰 물고기와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 하시니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창1:20,21)
공중과 물속에도 새와 물고기를 창조하시고, 이들에게도 생육하고 번성하라 하셨는데, 모두가 만남으로 생육하고 번성하게 창조되었다는 것은 누구나 알 것이다.
만남의 원리는 공중에서도 통하고 있다. 땅에서 수증기가 공중에 올라가 찬 공기와 만남으로써 비나 눈이 형성되어 내린다.
20세기에 들면서 비약적으로 발전한 공업도 알고 보면 만남의 원리에서 벗어난 것이 하나도 없다. 만남의 원리를 적용하지 않으면 공업 또한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만남이 있어야 세상 만물은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이다. 이것이 모두 창조의 원리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인류의 구원의 진리이다. 그래서‘만남은 세상 만물의 진화의 원리요, 생육 번성의 원리이며, 인류 구원의 진리이다.
문화도 만남으로 생성(生成)
우리가 사용하는 글자도 하나하나가 만남으로 만들어 진다. 만들어진 단어와 단어가 만남으로 새로운 단어가 생성(生成)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아버지 + 어머니=부모란 단어가 생성된다 여자와 남자가 만나면‘부부란 말이 생성되어 진다. 글자 자체도 만남으로 생성(生成)되어 진다. 계집 녀(女)와 아들 자(子)가 만나면 좋을 호(好)자가 만들어 진다.
인류 사회가 만들어가는 문화도 만남으로 새로운 문화가 형성되어 이어져 간다는 것이다. 한국의 전통문화와 서양문화가 만나 새로운 문화가 형성되어진 것이 그것이다. -이상 “우리가 먹어야 할 생명의 떡”에서-
이사야, 예수 그리스도, 바울의 말씀을 각각 생각해 보기로 하자.
최고의 예언자 이사야
구약 성서에는 많은 예언자가 있다. 그 중에서 최고의 예언자 ‘이사야’는 처음 창조되었을 때의 인류를 “극상품 포도나무”로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은 후 에덴에서 추방당하여 고통의 땅에서 살게 된 아담과 그 후손들을 “들포도나무”로 표현한다.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었도다. 그 중에 망대를 세웠고 그 안에 술틀을 팠었도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포도를 맺혔도다.”(사5:2)라고 하였다. 인류가 들포도로 되었다고 탄식하고 있는 것이다. 왜 이사야가 탄식하였을까? 인류가 들포도나무로 전락하여 인류라는 농장에 들포도나무만 무성함을 보고 탄식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인류를 하나님의 생명으로 새롭게 하시려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떡집’의 아들로 왔다. ‘베들레헴’이란 이름에는 ‘떡집’이라는 뜻이 있다고 한다. 예수는 떡집 아들로 이 땅에 오신 것이다. 이 떡은 사람의 영혼의 생명을 영원히 살리는 떡이다. 유대인들의 광야 생활 사십년 동안 하늘에서 내린 떡 ‘만나’가 사람의 육의 생명을 살리는 떡이었다면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의 몸을 십자가상에서 갈기갈기 찢어 접붙임의 가지로 주신 떡은 우리의 영혼을 영원히 살게 하는 생명의 떡이다.
사십년 광야의 ‘만나’는 장차 십자가상에서 예수의 몸을 떡으로 떼어서 주시는 것을 상징으로 보여주신 것이다. 만나가 이스라엘의 백성의 생명을 살렸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은 온 인류의 영혼을 살리는 생명의 떡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품속에 계시던 분이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요1:18)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시요, 예수의 살은 생명의 떡이다.
유대인들이 5병2어의 기적을 보고 예수께 말하였다. “저희가 가로되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요6:34) 당신의 능력으로 육의 주림을 해결해 달라는 말이다. 이에 예수께서는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요6:35)고 하신다. 그리고 53,54절에서는 “내가 진실로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라고 하신다. 자신의 살과 피를 먹어야 생명이 있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신다는 말씀이다.
예수께서는 위의 말씀을 하시기 전(前)에 떡 다섯 개와 생선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셨는데, 성서 공부하는 사람들은 이 기적을 하나같이 단순한 기적으로만 치부하고 있으나 아니다. 이 기적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이 장차 겪게 될 십자가 사건에서 당신의 살과 피를 갈기갈기 찢어 나누어 주실 것을 미리 보여주신 것이다. 오천 명의 군중은 인류 전체를 뜻한다. 또한 보리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이 먹고도 남은 떡이 열 두 바구니에 가득했다는 것은 세상의 모든 사람을 접붙임하고도 남는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다.
여기서 떡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떡을 떼어 주시는 분은 하나님을 상징한다.
위에서 예수께서는 자신의 살과 피를 먹어야 생명이 있다고 하셨다. 이 말씀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접붙임 받아야 한다는 말씀으로, “나는 참포도나무, 너희는 가지”, “내가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고 하셨다.
바울의 증언을 생각함
증언자 바울은 “천국 백성이 되는 길은 접붙임을 받는 길 뿐”이라고 떡을 먹는 방법론을 제시하고, “접붙임 하실 능력이 하나님께 있다.”(롬11:23)고 증언한다.
십자가 사건은 접붙임 하시는 사건이다. 증언자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갈2:20)고 자신이 강도의 모습으로 십자가상에서 죽었다고 증언 한다. 바울이 십자가 사건을 대속으로 보았다면 자신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대속이라면 예수만 죽고, 바울 자신은 죽지 않아야 되는 것이다. 그런데 앞에서 보았듯이 바울 자신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으니 오직 자신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실 뿐이라고 고백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떡집’ 아들로 오셔서 자신을 생명의 떡이라고 하셨는데, 그 생명의 떡을 먹는 방법은 “접붙임의 방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내 안에 모시는 것”이다. 십자가상에서 강도의 모습으로 둥치가 절단된 들포도나무인 우리는 죽임을 당하고,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는 죽임을 당하는 십자가 위에서도 뼈가 하나도 상함이 없이 살과 피를 우리에게 주셨으니 우리는 접붙임을 받아 생명의 떡을 그저 먹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접붙임에는 원목은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십자가의 죽음에서 예수의 뼈가 단 하나도 꺾이지 않았고, 두 강도는 두 발이 절단되었으며, 접붙임의 일은 농부이신 하나님이 하신다.
성서의 예언자 중 최고의 예언자라고 할 수 있는 이사야는 왜 ‘인류를 들포도나무’(사5:2)로 비유하였을까?
예수께서는 왜 “나는 참 포도나무, 너희는 가지”(요15:5)라고 하였을까?
증언자 바울은 왜 “저희를 접붙이실 능력이 농부인 하나님께 있다”(롬11:23)고 하였을까?
위의 세 말씀을 뜯어보면 하나로 연결됨을 알 수 있다. 이사야는 인류를 “들포도나무 농장”으로 보았다. 참포도는 간 곳 없고 들포도나무만 무성한 농장! 하나님은 이 들포도나무 농장에 당신의 품속에 있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참포도나무로 심으셨다. 바울의 증언대로 접붙임의 가지를 얻고자 하신 것이다.
참고한다면, 바울은 접붙임의 대상을 포도나무 대신 감람나무(롬11:24)를 예로 들고 있으나 접붙임의 의미는 달라지지 않는다.
창조물이 병들면 치유는 접붙임
창조의 원리는 만남이요, 창조물이 병들면 치유나 개량은 “접붙임의 만남”으로써 되는 것을 우리는 보는 것이다.
자연(自然)과 모든 동․식물은 하나님의 섭리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접붙임의 진리를 증언(證言)하고 있다.
인류를 포함한 자연과 모든 동․식물의 창조의 원리는 「만남」임을 성서는 보여주고 있다. 만남으로써 창조되고 번성한 것이다. 또한 사람과 모든 동 식물들이 병들면 그 치유와 개량 또한 접붙임의 만남으로 회복할 수 있음을 보는 것이다. 앞에서 예로 나온 들포도나 돌감람나무가 접붙임을 받으면 참포도나무나 참감람나무로 변하는 이치와 같다고 하겠다.
20세기 이후 의학이 빠르게 발달하였지만 그럴수록 접붙임의 진리가 증명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사람의 신장(腎臟)이 병들어 못 쓰게 되면 그 신장을 잘라내고 그 자리에 병들지 않은 신장을 갖다 붙이는 수술이 바로 “접붙임의 만남”이 바탕이 된 신장이식수술이다.
여기서 병자는 우리 인류요, 나 자신과 여러분이다.
신장을 제공하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이식 수술을 담당하는 의사는 농부인 하나님을 나타낸다. 이렇게 우리 인간의 육체도 접붙임의 복음을 증언하고 있다.
이천년 전에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죽은 강도! 강도는 죄인의 상징이다. 십자가의 사건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참생명을 인류에게 접붙임 하는 사건이었던 것이다.
전지전능의 하나님께 진정으로 찬미와 감사를 올립니다.
만물의 창조주 하나님은 ‘만남’이라는 하나의 원리로 우주 만물을 만드시고 인류를 창조하셨음을 보았다. 아담의 죄로 물든 인류가 원래의 모습인 극상품 포도나무로 돌아가는 길은 창조의 원리인 “접붙임의 만남”으로써 “십자가의 접붙임”뿐임도 보았다. 이와 관련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에 대하여 여러 가지로 말씀하시고 계신다.
나는 참포도나무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
나는 새 생명의 떡이니 내 살과 피를 먹어야 너희에게 나의 생명이 있다.
나를 영접하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다.
나는 세상에 새 생명을 밝히는 빛
나는 새 생명의 씨앗
이처럼 여러 가지로 예를 들어 말씀하고 계신다. 우리는 이 말씀들을 받아들이고 믿는 것이다.
여기서 그리스도인들이 깊이 생각해야 할 부분이 있다. 신장병 환자가 신장을 이식받고 싶어도 뜻대로 이식수술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식수술을 받기 위해서는 두 가지 필요조건이 충족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첫째, 신장을 제공해 줄 생명의 은인(恩人)이 있어야 한다. 우리에게 은인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둘째, 의술이 높은 의사를 만나야 수술이 성공 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의술이 높으신 하나님이 계신다.
인류의 주인인 창조주는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곧 참포도나무를 들포도나무 농장에 보내시어 들포도나무로 농장! 곧 세상 한 가운데 심으셨다. 그리고 접붙임의 일은 농부인 아버지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이다. 증언자 바울은 “(돌감람나무인)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十字架)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돌감람나무인)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참감람나무)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自己)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라디아2:20 괄호 안은 편집상 삽입하였음.)
이리하여 참감람나무 그리스도께서 사신다는 것을 바울은 새로운(新) 창조로 보고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라고 하였다.
위에서 본 것 같이 들포도나무인 우리 자신은 스스로 접붙임 할 수 없고 농장 주인이 접붙임의 일을 하시는 것이다. 우리의 주인! 창조주 하나님이 우리에게 당신의 생명을 주시어 하늘에 속하는 사람으로 다시 살게 하시는 것이다.
즉, 아들이란 이름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피를 우리에게 흘러 주셨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인류’라는 농장에 있는 모든 들포도나무를 접붙임 하시는 일을 하나님이 하셨다. 이것이 은혜요, 우리를 하늘 백성으로 되게 하시는 큰 역사이다.
성부, 성자, 성신-성 삼위께서는 우리 인류! 여러분과 나를 위하여 일하고 계신다. 우리 기독자들은 이 사실을 믿는 것이다. 증언자 바울은 “옳도다. 저희는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우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고 하였다.
바울은 또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롬11:36)라고도 하였다.
「만남」! “흙과 하나님의 생기의 만남”으로 아담이 창조되고, 그 아담을 창조한 원리가 모든 창조물 생성(生成)의 원리이며, 이로 우주만물을 창조하였음을 우리는 보았으며, 십자가의 접붙임의 만남은 하나님의 나라로 돌아가는 진리임도 보았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접붙임의 만남’이라는 진리가 우뚝 서 있는 것이다.
「만남」이라는 하나의 진리로 천지를 창조하시고, 인류 구원을 이루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천우 예배모임 안내
때 : 매월 두 번째 토요일 오후 5시 30분
곳 : 스피치와 변화 4층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동 6가 1-15번지 (영등포 시장 로터리)
1부 예배모임 사회 : 임효성
말씀 하시는 분 : 최 병주, 한장희, 임중기.
2부 신앙 간담 사회 : 정인순
연락처 : 정인순 (011-768-8865) 임중기 (010-6346-3736)
매월 (2번째 토요일) 오후 5시30분시 예배모임이 있습니다.
5시 30분 오시는 대로 돌아가며 성경을 몇 귀 절씩 읽고 6시에 시작합니다. 모임이 끝나면 저녁을 같이 하고 해산합니다.
지하철 : 1호선 이용시 영등포역에서 하차한 후 롯데백화점 방향으로 나와 신세계 백화점과 경방필 백화점을 지나 영등포시장 로터리 사거리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면 ‘스피치와 변화’ 간판이 보임
지하철 5호선 이용시 : 영등포시장역에서 하차한 후 4번 출구로 나와 200미터 직진 후 우측에 모닝글로리 문구점을 끼고 우회전 하면 ‘스피치와 변화’ 간판이 보임
주차장은 ‘영남 주차장’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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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공부 발표 2011년 4월 10 (비매품)
E-mail : imjoongki@hanmail.net http://cafe.daum.net/1000wooo
電話 010-6346-3736 요한복음공부 발표인 임 중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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