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공부

하나님 아들 권위

임중기 2011. 2. 10. 20:55

< 요한복음 공부 제22과>

하나님 아들의 권위

본문 말씀 5:19~30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의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또 그보다 더 큰 일을 보이사 너희로 기이히 여기게 하시리라.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이는 모든 사람으로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 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들을 공경치 아니하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를 공경치 아니하느니라. 내가 진실로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永生)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진실로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또 인자됨을 인하여 심판하는 권세를 주셨느니라.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내가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 대로 심판하노니 나는 나의 원대로 하려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원대로 하려는 고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

본문 말씀 분해

19절 아버지의 하시는 대로 아들도 행한다

20절 모든 것을 아들에게 보여주신 아버지

21절 인류를 다시 살리실 아버지와 아들

22절 아버지는 아들에게 심판을 맡기심

23절 아들을 공경치 않음은 아버지를 공경치 않음과 같다

24절 아버지와 아들을 믿으면 영생을 얻고 심판에 이르지 않음

25절 죽은 자들이 듣게 될 하나님의 음성

26,7절 아버지로부터 받은 권세

28절 복음의 음성을 들을 때

29절 믿는 자의 생명의 부활

30절 아버지가 원하는 의로운 심판

아버지 품속에 있었던 자신을 말함

요한복음 공부 5장 초반에서 예수께서는 38년 동안이나 ‘베데스다’ 연못에 넣어줄 사람을 기다리고 있던 병자를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는 한 마디 말씀으로 걸어가게 함으로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자신을 보이셨다. 그리고 38년 동안 누워 있다가 일어나 걸어가는 사람의 기적을 보면서도 안식일에 율법을 범했다고 비판하는 유대인들을 향하여 ‘너희가 마음과 얼굴을 돌려 아버지 하나님을 보라!’고 방향 전환의 말씀을 하신다. 곧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5:17)는 말씀이다.

예수께서는 ‘율법’이라는 우물 안만 보지 말고, 율법 밖으로 마음의 눈을 돌려 무한히 넓은 하나님의 자혜하심을 보라고 하신다. 또한 자신이 본대로 들은 대로 일한다는 것도 말씀하신다. 곧 아버지 품 안에 있으면서 보고 배운 ‘아버지가 하시는 일’을 나도 한다는 말씀이다. 이리하여 예수는 유대인들이 지적한대로 저들이 예수를 죽이고자 한 것은 “안식일만 범할 뿐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 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5:18) 때문이었다. 맞는 말이다.

위에서 살핀 대로 오늘 공부는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에 관한 내용이다.

본문 공부

19절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며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 하더라.” 이 말씀은 증거자 요한이 1장 14절에서 기술한 말이다. 성서를 공부하는 우리들은 위의 말씀을 전제로 하여야 한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함께 말씀으로 계셨던 분이 이 세상에 하늘의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독생자의 모습으로 오셨다는 것을 우리가 한시도 잊으면 안 된다.

20절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의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또 그보다 더 큰 일을 보이사 너희로 기이히 여기게 하시리라.”

‘예수’란 이름에는 ‘세상을 구원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뜻과 ‘참 사람’이라는 뜻이 있다.

‘그리스도’란 말에는 ‘하나님’이라는 뜻도 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면 예수와 하나님이 함께 계심을 나타내는 말이다.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의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아버지가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셨다는 것은 늘 하나님 안에 예수가 있고, 예수가 하나님과 하나라는 말씀이다. 즉, 하나님의 일하시는 것을 보아서 다 알기 때문에 그 일을 하신다는 말씀이다.

그보다 더 큰 일을 보이사 너희로 기이히 여기게 하시리라’ 여기서 ‘그보다 더 큰 일’이란 인류 구원의 일이다. 우리 믿는 사람이 이일들을 미루어 보면 참으로 기이(奇異)히 여기는 일들이다. 하나님이 이루어 주시는 역사-곧, 인류 구원의 일이 기이하다는 것이다.

21절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

19과 공부에서 죽어가는 왕의 신하의 아들이 예수님의 말 한마디에 살아난 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능력인데, 그 아들(예수)도 아버지의 권위로 살리고자 하는 사람들을 살리신다는 말씀이다.

22절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하나님께서는 인류를 살리시는 권한과 심판하는 권한을 모두 아들 예수께 맡기셨다는 말씀이다.

23절 “이는 모든 사람으로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 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들을 공경치 아니하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를 공경치 아니하느니라.”

모든 사람으로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 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은 왜 인류를 살리고 심판하는 권한을 아들에게 맡기셨는가에 대한 설명이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 같이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 또한 경외토록 하겠다는 원려(遠慮)에서다. 곧, 사람들로부터 아들 예수를 깊은 사랑과 권위의 만왕의 왕으로 모시게 하시겠다는 것이다.

‘아들을 공경치 아니하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를 공경치 아니하느니라.’ 앞의 설명에 대한 반대의 설명으로, 아들을 공경하지 않는 사람은 아들을 보낸 하나님도 공경하지 않을 사람이라는 말씀이다. 즉, 아들을 공경하는 것이 그 아버지를 공경하는 일이라고 하신다. 이 말씀을 한 마디로 줄인다면 ‘아버지와 아들은 하나’라고 하겠다.

24절 “내가 진실로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永生)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예수께서는 중요한 말씀을 하실 때마다 “내가 진실로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라고 하셨다.

예수의 하시는 말씀을 듣고, 예수를 이 땅에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고’ 심판도 받지 않으며, 그러므로 죽음에서 구원을 얻어 영생하게 된다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다음에 공부할 36절에서 “아버지께서 내게 주사 이루게 하시는 역사(役事)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나를 위하여 증거하는 것”이라고 아주 중요한 말씀을 하신다. 이 말씀은 아버지께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주사 이루게 하신 ‘역사’-곧, 장차 다가올 십자가 사건을 하나의 큰 역사로 예언하신다. 이 역사를 이루게 하신 그 역사를 믿으면 사망에서 생명! 곧, 영생으로 옮긴다는 것이다. 들포도나무에서 참포도나무로 옮겨지는 역사를 믿으라는 것이다. 십자가의 사건은 다 이루어 놓은 것을 믿는 것이다. 그래서 은혜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은혜로운 일에 감격하여 감사와 찬미를 드릴 뿐이다. 만 개의 입이 있다 하여도 감사할 따름이다.

25절 “진실로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여기서 우리는 참으로 중요한 말씀을 접하게 된다, 곧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온다는 말씀이다. 죽은 자들은 누구인가? 바로 나와 여러분이다. 또 과거의 사람과 현재의 사람, 미래의 사람이다. 예수님은 ‘나로 먼저 가서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 하옵소서’라고 청한 제자에게’ “죽은 자들로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라.”(눅9:59,60)고 하셨다. 이사야는 인류를 들포도나무로 비유하였다. 들포도나무는 그 열매가 참포도 축에 들지 못하는 열매다. 바꾸어 말하면 죄인으로 전락한 우리가 이대로는 천국백성이 될 수 없는 처지였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하늘 백성이 될 수 없는 사람들을 죽은 사람으로 표현하신 것이다.

포도농장에 가득 찬 들포도나무-곧, 세상 인류를 하늘의 생명인 예수 그리스도로 접붙임을 받게 하시여 참포도나무로 개조(改造)하시려고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다. 즉, 참생명을 주시려고 예수께서 오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접붙임”으로 받음으로써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어질 수가 있다. 이렇게 생명이 옮겨진 사람은 영생을 얻었다(5:24)고 할 수가 있다.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이 죽은 자들이다. 그런데 이들이 하나님 아들의 음성을 듣게 된다는 것이다. “이 때”란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서 복음을 전하게 된 그 때부터다. (십자가상에서 접붙임 하실 때로 볼 수도 있다.) 곧, 예수의 시대부터 과거와 현재 미래까지 즉, 인류를 심판하실 때까지를 말한다.

26,7절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또 인자됨을 인하여 심판하는 권세를 주셨느니라.

예수께서는 아버지 속에 생명이 있는 것처럼 자신도 아버지로부터 생명을 받았다는 것을 말씀하신다. ‘아버지 속에 있는 생명’이란 인류에게 주신 생명인데, 그 생명을 자신에게도 주셨다는 말씀이다. 예수 자신 속에 있는 생명은 인류를 새롭게 하실 생명이다. 곧, 접붙임으로 인류에게 주게 될 하늘 아버지의 생명인 것이다.

장차 있게 될 접붙임의 사실을 믿지 못하는 사람을 심판할 권한도 하나님으로부터 받았다는 말씀이다. 증언자 바울은 이 사실을 ‘저희는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우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롬11:20)고 하였다.

28절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아들이 아버지로부터 권세 받은 것을 기이하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무덤 속이란 접붙임을 받은 상태-곧, 부활초가 나오기 전(前)에 하나님의 권세를 받은 자, 즉 예수 자신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온다는 것이다. ‘음성’은 ‘복음’을 가리키는 말이다. 장차 십자가의 접붙임으로 완성될 복음을 모두가 듣는다는 것이다. 듣고 믿는 자는 생명의 부활로 다시 살게 된다. 그래서 예수께서도 사흘 동안 무덤에 계셨는데 그 때에 우리도 함께 무덤에 있었던 것이다. 이것을 바울은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롬6:5)고 하였다.

또한 바울은 인류가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고 무신앙인으로 살 때를 죽어 있는 상태로 말하고 있다. 예수와 연합하여 십자가상에서 죽어 있는 상태로 있다가 하늘의 복음을 들을 때에 거듭나는 것으로 본 것이다. ‘무덤 속’이란 십자가상에서 예수와 같이 죽어 있는 상태를 말한다.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음성은 십자가 복음이다. 이 복음을 듣고 믿으면 생명의 부활로 산다는 말씀이다. 여기에 대하여 바울은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 찌어다.”(롬6:11)라고 하였다.

다시 정리 하면, 아담의 죄로 인하여 죄인 된 사람을 ‘죽은 사람’이라고 예수님은 보신 것이다.

‘무덤 속에 있는 자란 접붙임의 복음을 접하지 못하여 아직 ‘믿음이 없는 사람들을 무 덤 속에 있는 자’로 본 것이다.

29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이 말씀을 얼핏 생각하면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도 ‘선한 일을 행하면 생명으로 부활’하는 것으로 자칫 생각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크게 잘못된 생각이다. 하나님 앞에서 새로운 생명을 받지 못한 사람에게는 선한 일도 다 아담의 자손으로 죄인들이 행하는 일들이다 특히 선한 일들을 구분하기가 참으로 어려운 것이다. 여기서 ‘선한 일’이란 믿느냐 믿지 않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하나님의 은혜인 그리스도의 생명을 믿음으로 받아 생명의 부활로 천국에서 ‘악한 일’‘믿지 못하는 자’는 심판의 부활을 받아 지옥에서 산다는 말씀이다. 그래서 천국과 지옥이 극명하게 나뉘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다시 한번 깊이 생각 할 부분이 있다. 아담과 하와는 죄인으로 전락하여 하나님의 방대한 에덴동산의 꿈을 산산조각 나게 하고, 그 꿈의 동산에서 추방당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죄인으로 전락하여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아담의 후손들을 불쌍히 여기셨다. 그래서 처음 창조 때의 모습으로 회복시키시려고 창조자 자신이 아들의 모습으로 육신의 옷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당신의 몸을 갈기갈기 찢어 접붙임으로 새로운 생명을 우리에게 주셨는데, 그 것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받는 심판은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에덴동산에서 죄를 범한 아담과 하와는 추방을 당하였다. 따라서 예수님의 희생에 의한 재창조를 믿지 못하는 자들에게 심판이 있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자신의 생명을 갈기갈기 찢어 나누어 주었는데 그 희생을 헛되이 하는 것은 죄임에 분명하다.

심판의 의미는 크게 두 가지로 생각 할 수 있다.

첫째 :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의 생명을 갈기갈기 찢어 우리에게 주었는데, 그 사실을 헛되이 함으로 받는 심판.

둘째 : 들포도 열매가 참포도 열매 축에 들지 못한다 하여 스스로 하나님을 피하여 도망함으로 받는 심판.

30절 “내가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 대로 심판하노니 나는 나의 원대로 하려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원대로 하려는 고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

예수님은 하나님의 권세를 쥐고 태어났지만 ‘모든 일을 내 마음대로 할 수가 없다. 세상을 심판하는 일도 나를 보내신 이의 원대로 할 뿐이다.’고 하신다. 그래서 예수님의 심판은 의롭다는 말씀이다.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

어느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의 사고(思考)가 굉장한 것이 아니고 자신의 작은 마음에서부터 시작한다고 말하고 있다.

특히 그 사람은 이웃과는 다투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겠다고 말한다. 이웃과는 절대 다투지 않는다는 그 사고야말로 평화주의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다. 이웃이라고 할 때에 자신과 관계가 있는 사람은 다 이웃이다. 누구나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과 다투지 않고 산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라끼리는 서로 국익과 직결되기 때문에 이웃 나라와의 분쟁이 있게 되는데, 평화를 먼저 생각한다면 나라끼리도 분쟁은 줄어들 것이다.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의 소박한 마음. 이웃과는 다투지 않겠다는 작은 마음으로부터 평화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닐까. 작은 이익 때문에 다투고 나면 그 뒤에 오는 손해는 무척 크다. 다투기보다 우선은 손해를 보더라도 그런 일이 반복되면 결국엔 그 이웃과도 좋아진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평화주의자는 구호나 외침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작은 마음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누구나 평화주의자가 될 수 있다. 누구나가 이웃과는 다투지 않겠다는 소박한 생각을 갖는다면 이 땅에는 다툼 없는 평화의 땅이 되지 않을까?

聖誕 카드

韓日 두 나라 無敎會의 元老 (90歲가 넘은) 선생님께 성탄 카드를 받았다.

韓國의 원로 선생님은 이진구 선생님이 보내주셨다.

日本의 원로 선생님은 佐藤司郞 선생님이 보내주셨다.

이 두 분의 원로 선생의 카드는 나에게 萬感이 교차하게 한다.

천우 예배모임 안내

매월 두 번째 (토요일) 오후 5시 30분

 장소 :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동 6가 1-15번지

 (영등포 시장 로터리 ‘스피치와 변화’ 4층)

 

매월 (2번째 토요일) 오후 5시30분시 예배모임이 있습니다.

 5시 30분 오시는 대로 돌아가며 성경을 몇 귀 절씩 읽고 6시에 시작합니다.

말씀 하시는 분 :

최 병주, 한 장희, 임 중기

 

지하철 : 1호선 이용시 영등포역에서 하차한 후 롯데백화점 방향으로 나와 신세계 백화점과 경방필 백화점을 지나 영등포시장 로터리 사거리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면 ‘스피치와 변화’ 간판이 보임

 지하철 5호선 이용시 : 영등포시장역에서 하차한 후 4번 출구로 나와 200미터 직진 후 우측에 모닝글로리 문구점을 끼고 우회전 하면 ‘스피치와 변화’ 간판이 보임

 주차장은 ‘영남 주차장’이용

 처음 오시는 분이 찾기 힘드시면 아래 전화로 연락

 정인순 (011-768-8865)

임중기 (010-6346-3736)

요한복음 공부 발표 2011년 02월 10일 (비매품)

E-mail : imjoongki@daum.net http://cafe.daum.net/1000wooo

電話 010-6346-3736 요한복음공부 발표인 임 중 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