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공부

베데스다 연못 곁에서 일어난 기적 이야기(상)

임중기 2010. 12. 10. 18:49

<요한복음 공부 제20과>

베데스다 연못 곁에서 일어난 기적 이야기(상)

본문 말씀 5장 1∼8절

“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있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行閣) 다섯이 있고, 그 안에 많은 병자, 소경, 절뚝발이, 혈기 마른 자들이 누워 (물의 동(動)함을 기다리니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동하게 하는데, 동한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거기 삼십팔년 된 병자가 있더라.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동할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8예수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양해를 구합니다

요한복음 공부를 19과까지 해오면서 문장을 맺을 때 존칭을 써왔습니다. 그러나 이는 문장이 길어지는 원인이 되기도 할 뿐더러 전체 21장에서 이제 4장을 마친 단계에서 앞으로 남은 과정 전체를 그대로 해 가기에는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이에 문장을 좀더 간결화 시키기 위하여 끝맺는 말을 평문으로 바꾸려 하오니 독자 여러분들의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예루살렘은 유대인의 수도로 예루살렘 성전이 있을 뿐 아니라 여러 통치기관과 교육기관들이 있고, 상업 또한 발달된 곳이다. 또한 성전이 있음으로 해서 성직자들과 내로라는 지식층들이 모여 있다고 할 수 있는 곳이다.

예루살렘을 드나드는 여러 문 가운데 하나인 양의 문(양이나 염소 등 가축들이 드나드는 문) 옆에는 “베데스다”라는 연못이 있다. 연못 주위에는 행각 다섯 채가 있는데, 그 행각에는 병 고침을 받기위하여 여러 지방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가득했다. 또한 연못 곁에도 많은 “병자, 소경, 절뚝발이, 혈기 마른 자”들이 누워 있다는 기사다.

기이(奇異)한 것은 이 연못의 물은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동하게 하는데, 동한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된다” 사실이다. 이 연못은 현대 용어로는 간헐천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병을 낫게 하는 실로 놀라운 물이 아닐 수 없다. 의술이 발달되지 못한 당시의 유대인들에게는 큰 위로가 되는 기이한 연못이라고 하겠다. 그 연못가에는 38년 된 병자가 누워있었는데 몸을 움직이기 힘든 사람이었다.

예수께서 이 병자를 보신 후 ‘병이 벌써 오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물으니 병자는 ‘주여 물이 동할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라는 하소연을 한다. 참으로 기막힌 사연이다. 그는 38년이나 거기 있으면서 물속엘 들어가질 못했지만, 언젠가는 병을 고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병고(病苦) 속에서도 참으로 고귀(高貴)한 희망이다. 이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 신앙이다. 예수님께 치유를 받은 사람들 모두가 하나같이 큰 소망과 믿음이 있었다.

본문 공부

1절 “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있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이 절은 앞의 4장 46∼54절의 기사에서 왕의 신하에게 열병에 걸린 그의 아들에 대하여 “네 아이가 살았다!”는 말씀으로써 낫게 하신 예수님의 그 후의 정황 설명이다.

2절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예루살렘에는 양 같은 가축들이 드나드는 문이 있어 양문이라고 하는데, 그 곁에 히브리말로 ‘베데스다’라는 못이 있고 그 옆에는 거기 행각 다섯 채가 있다고 했다.

3절 “그 안에 많은 병자, 소경, 절뚝발이, 혈기 마른 자들이 누워 물의 동함을 기다리니”

이 행각은 처음에는 목동들이 쉬는 집이었을 것이지만, ‘베데스다’ 못의 기적이 알려지면서 치유를 받기 위해 각지에서 몰려온 환자 등 몸이 불편한 사람들이 차지하고 누워서 물이 움직이기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들이다.

4절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동하게 하는데, 동한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베데스다 못의 물은 평소에는 잠잠했다가도 드물게 천사가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물의 움직임이 멎은 뒤에 처음으로 물 속에 들어가는 병자는 어떤 병이나 불구도 낫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행각에는 신병을 치유하려는 병자들로 항상 북적이었다.

5절 “거기 삼십팔 년 된 병자가 있더라.”

물의 동함을 기다리며 누워있는 병자들 중에 “삼십팔 년 된 병자가 있더라”고 하였다. 자신의 병을 낫기 위하여 삼십팔 년 동안이나 그곳에 있었다니 참으로 기막힌 사연이요, 병자 자신의 끈질김을 본다.

6절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양문을 지나던 예수님이 한 구석에 누워있는 병자를 보시고는 대뜸 그의 병이 오래된 줄을 아시고 그에게 다가가 “네가 낫고자 하느냐?”고 물으신다. 삼십팔 년 된 환자에게 구원자가 나타나신 것이다.

7절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동할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이 절은 따로 설명이 없어도 이해할 수가 있다. “물이 동할 때면 못에 들어가고 싶지만 나를 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습니다. 거기에다 온 힘을 기울여 내 힘으로 가보지만,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갑니다.” 이 병자의 말 속에 저간의 사정과 염원이 담겨있다. 참으로 기막힌 사연이다.

8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의학적으로나 세상 상식으로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하시니 걸어갔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깊이 생각해야 할 일들이 있다.

만약 병자가 생각하기를 “내 병은 내가 잘 알아. 내 병은 이 연못에 먼저 들어가야만 낫는 병이야.” 하며 일어나려고 하지 않았다면, 그보다 “일어나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하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 않았다면 병은 낫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 병자는 낫고자 하는 소망을 잃지 않고 살았었다. 병자의 하소연대로 “주여 물이 동할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하는 말이 사실이라면 얼마나 기막힌 사연인가. 병자가 희망을 잃지 않고 38년이나 거기 있었다는 것은 참으로 고귀(高貴)한 희망(希望)이다. 끝까지 잃지 않은 희망-이것이 신앙(信仰)이다. 예수님께 치유를 받은 사람들은 모두가 하나같이 큰 소망과 믿음이 있었다.

이 병자 스스로는 절대로 병에서 나을 수 없는 입장이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우리의 힘으로는 절대로 하늘 백성이 될 수 없는 처지에 있는 들포도나무들이다. 들포도나무 스스로는 절대로 참포도나무가 될 수 없다. 농부인 하나님이 십자가 사건으로 들포도나무인 강도도 죽이시고, 참포도나무인 예수 그리스도도 죽이시어 접붙임 하심으로 우리들을 하늘 백성으로 다시 살게 하셨다.

신앙이란 병자 자신으로는 할 수 없는 일들을 농부이신 하나님이 다 이루어 놓으셨다는 것을 믿는 마음이다.

여적(餘滴)

요한복음 공부를 시작하여 처음 100부를 인쇄하여 95부를 발송하였다. 그리고 19과 공부에서는 120부를 인쇄하여 115부를 발송하게 되었다.

그사이에 반려하신 분은 다섯 분이다. 서울의 000님, 부천의 000님, 인천의 000님, 광주의 000님 홍성에 000여사님이시다.

특히 나의 책에 대하여 비판하신 선생님은 많은 분들도 비판하라는 의미로 나의 전화번호와 주소까지 공개하며 수위를 높이셨지만, 다른 분들로부터는 어떤 비판의 전화나 편지도 없었다. 오히려 격려하는 글과 긍정의 편지를 주신 분이 많았다. 그런 분들 가운데는 특히 풀무학교 출신 분들이 많았는데, 그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생각하니 열린 교육, 독립교육의 덕이 아니었나 생각 된다. 교육의 중요함을 새삼 느낀다.

임중기의 세상사는 이야기』란 ‘블로그’에는 기적이 일어나고 있다. 평일에는 5,6명이 다녀가는데, 매월 10일이면 그 숫자가 20여 명을 넘기는 것이다. 그 까닭은 어디에 있을까? 요한복음 공부를 올리는 날이 매월 10일인데, 며칠 후면 우편으로 도착할 그 공부를 며칠이라도 일찍 보려는 것 아니겠는가.

40년 신앙의 형제인 박ㅇㅇ 선생은 생각의 차이로 나에게 절교를 선언하고, 이ㅇㅇ 선생은 진리 발견한 것을 뒤집고 나오라고 하시지만, 그래도 매월 10일 날이면 요한복음 공부를 읽기 위해 찾아오는 분들이 있는데 어찌 요한복음 공부를 접을 수 있으리오.

요한복음 공부 발표 2010년 12월 10일 (비매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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