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공부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임중기 2016. 7. 7. 19:21

< 요한복음 공부 제 82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본문 말씀 19: 1-7

“이에 빌라도가 예수를 데려다가 채찍질 하더라. 군병들이 가시로 면류관을 엮어 그의 머리에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고 앞에 와서 가로되, 유대인의왕이여 평안할 찌어다 하며 손바닥으로 때리더라. 빌라도가 다시 밖에 나가 말하되 보라, 이 사람을 데리고 너희에게 나오나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로라 하더라. 이에 예수께서 가시 면류관을 쓰고 자색 옷을 입고 나오시니 빌라도가 저희에게 말하되, 보라 이 사람이로다 하매 대제사장들과 하속들이 예수를 보고 소리 질러 가로되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하는지라 빌라도가 가로되 너희가 친히 데려다가 십자가에 못 박으라. 나는 그에게서 죄를 찾지 모하노라. 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우리에게 법이 있으니 그 법대로 하면 저가 당연히 죽을 것은 저가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함이니이다.

 

본문 분해

1-2절 예수를 채찍질 하고, 머리에 가시면류관을 씌우다

3절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 찌어다

4절 내가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였다

5절 보라 이 사람이로다

6절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7절 저가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함이니이다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요한복음19장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기록한 장이다.

신약성서가 기록된 이래 지금까지 聖書學者들은 성서를 잘 못 읽어냈다. 바꾸어 말하면 십자가 위에서의 세 사람의 죽음 가운데 강도의 죽음에서는 가치의미(價値意味)를 찾아내지 못하고 간과한 데에 있다.

예언자 세례 요한은 “세상 죄를 잡아 죽이는 하나님의 아들”로 예수 그리스도를 정의하고 있다. 여기서 죄(罪)는 인간들의 죄를 말하는데, 강도! 즉 들포도나무의 밑동이 절단 되어 죽기 위하여 십자가상에 매달렸으며, 예수 그리스도는 좌∙우의 절단 된 들포도나무의 몸통에 ‘참포도나무의 가지! 곧 피를 흘려 주기위해 돌아가신다. 베드로는 이 장면을 인용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벧전1:2)한다고 쓰고 있다.

그런데 ‘헬라어’를 가르치시는 광주의 전준덕 선생은 “앞에서도 누누이 지적했지만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은 강도’는 예수와 상관없는 존재다”라고 기록하고 있다(성서신애 2010년 3월호 342호에 35쪽).

전준덕 선생뿐만 아니라 중세기의 루터나 칼뱅 이후에도 개신교회에서는 강도의 죽음의 의미와 가치를 읽어내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자연과학은 눈이 부시게 발전하고 있는데, 그리스도교에서 내세우는 진리는 6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앵무새처럼 속죄의 신앙관, 대속의 신앙관만을 내세우고 있어 기독교는 쇠락의 길을 가고 있다.

그러나 이는 아니다. 종교가 통치세력을 업고 칼날을 휘두르던 옛날에는 칼뱅의 전통신앙관에서 벗어나면 죽임을 면치 못했기 때문에 설령 진리를 발견했다고 하드라도 발표를 못하거나, 그 연구가 위축되어 왔었다. 그러나 지금 개신교에서는 누구나 성서 해석을 허용하고 있으므로 타당한 진리를 발견하다면 누구든 그 진리를 주창할 필요가 있다. 그 길만이 기독교의 쇠락을 멈추게 할 것이다.

세상 죄(罪)를 제거하는 하나님!”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羊)’이로다.”(1:29절)

위의 말씀만을 보면 ‘예수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이라고 했으니 마틴 루터가 주장한 대속의 신앙을 뒷받침하는 말씀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日本의 신(新) 공동번역 성서에는 아래와 같이 되어 있다.

“その翌日 ヨハネは 自分の方へイエスが来られるの見て言った 見よ世の罪を取り除く神の小羊だ.”

여기에서 罪を取り除く이 부분의 우리말 성서는 ‘죄를 지고 가는’ 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取り’ <도리>는 한국어로는 얻다, 받다, 잡다 등의 뜻이다. 한마디로 이야기 하면 ‘손으로 잡다’ 즉, ‘죄를 잡아’로 번역하면 될 것이다.

‘除く’ <노죠꾸>는 ‘없애다, 치우다, 제거하다, 죽이다’로 번역 할 수 있으며, 전체를 번역하면 “죄를 잡아 제거하는 하나님!”으로 본다. 죄를 잡아 없애는 일을 농부인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이다. 그런데 두 강도와 예수가 십자가상에서 로마 군병에 의하여 못을 박아 죽임을 당하는데, 강도와 예수의 죽음의 의미가 각각 다르다는 것이다.

인류의 대표인 강도는 강도의 죄 된 몸을 제거하기 위하여 본문 말씀과 같이 ‘죄를 잡아 제거하는’ 의미의 죽음을 당하는 것이고,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 어린양으로서 희생양의 피-곧, 참포도나무의 가지를 하나님이 취(取)하기 위하여 죽이는 것이다.” (공부 제 6과에서)

 

본문 공부

 1,2절 이에 빌라도가 예수를 데려다가 채찍질 하더라. 군병들이 가시로 면류관을 엮어 그의 머리에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고

앞 과에서 공부한 18:38절 말씀에서 빌라도는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노라’ 하면서 예수를 놓아주겠다고 하니 유대인들이 ‘이 사람이 아니라 바라바’를 놓아달라고 소릴 지른다. 그러자 빌라도는 어쩔 수 없이 예수에게 모질게 채찍을 가했다.

빌라도가 예수께 모질게 채찍질을 하자 군병들은 한발 더 나아가 가시로 면류관을 엮어 예수님의 머리에 씌우고, 자색 옷을 입혔다. 그 재판관에 그 군병이다.

 

 3절앞에 와서 가로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 찌어다 하며 손바닥으로 때리더라.”

예수님의 머리에 가시면류관을 만들어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힌 군병들이 이번에는 예수 그리스도 앞에 와서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 찌어다’ 하면서 손바닥으로 때리며 야유를 하고 있다.

 

 4절 “빌라도가 다시 밖에 나가 말하되 보라, 이 사람을 데리고 너희에게 나오나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로라 하더라.”

채찍질을 끝낸 빌라도가 예수님을 끌고 밖에 나가서 유대인들에게 말한다. 자기는 저토록 매질까지 했지만, 예수에게서 아무런 죄도 찾지 못했다고.

여기서 빌라도의 마음으로 돌아가 보면, 아무런 죄도 없는 예수를 가혹하게 채찍질해서라도 유대인들의 마음을 누그러지게 하려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5절 “이에 예수께서 가시 면류관을 쓰고 자색 옷을 입고 나오시니 빌라도가 저희에게 말하되, 보라 이 사람이로다 하매”

채찍질에 몸은 축 늘어지고, 머리에는 가시 면류관을 쓰고, 몸에는 자색 옷이 입혀진 예수 그리스도의 형체(形體)는 알아 볼 수 없는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런 예수를 가리키며 빌라도는 유대인들에게 ‘보라 이 사람이로다’ 라고 한다. 이 말에는 ‘불쌍하지도 않느냐’는 의미가 담겨있다.

‘가시 면류관’은 인류의 새로운 왕의 면류관을 상징한다. 여기서 참생명을 받은 사람들의 왕으로 서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다.

 

 6절 “대제사장들과 하속들이 예수를 보고 소리 질러 가로되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하는지라. 빌라도가 가로되 너희가 친히 데려다가 십자가에 못 박으라. 나는 그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노라.”

빌라도는 대제사장들과 군병들, 백성들에게 동정심을 얻기 위하여 예수를 채찍질 하였는데, 유대인들의 반응은 변하지 않고 오직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해달라고만 한다. 그러자 빌라도는 ‘나는 그에게서 죄를 찾지 못했으니 너희가 데려다가 마음대로 하라’고 한다. 유대인들의 극렬한 요구에 빌라도가 손을 든 것이다.

 

 7절 “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우리에게 법이 있으니 그 법대로 하면 저가 당연히 죽을 것은 저가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함이니이다.”

대제사장과 유대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도록 미워한 죄목은 “저가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함”이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였던 것이 유대인들에게는 죽어야 할 죄목인 셈이다. 그런데 그리스도敎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받으면 모두가 하나님의 아들이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 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으니” 곧 하나님의 품속에 있던 예수 그리스도는 진정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당시의 사형제도

예수님 당시의 팔레스티나 지방과 유럽의 대부분 지역은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이때 이런 지역들에서는 죄인들을 다루는 재판권이 로마 관리에 있었고, 사형수는 반드시 십자가에 매달고 못을 박아 죽게 했다. 단, 로마 시민권자는 십자가형에서 제외되었다.

초기 기독교를 이방세계에 널리 알린 바울은 로마 시민권을 갖고 있어서 전도하는 과정에서 여러 위험으로부터 로마 군인들의 도움을 받았기에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전도할 수가 있었다.

 

“규스다 부 도레”의 성화 설명

“규스다 부 도레”는 세계적인 프랑스의 삽화가다. 日本語 版 “그림으로 본 성서”에는 “도레”의 십자가상의 성화삽화 두 장이 들어있다. 동봉하는 성화는 이 책에 실린 작품들이다.

“규스다 부 도레”는 십자가의 삽화에서 '포인트(point)를 족(足) 곧, ‘다리’에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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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공부 발표 2016년 7월 10일 (비매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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