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 요한복음 공부 제 87과>
勇壯 아래마대 사람 요셉!
본문 말씀 19: 38-42
본문 분해
38절 아리마대 요셉, 예수의 시체를 수습하다
39절 니고데모,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가지고 오다
40절 예수의 장례준비
41절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새 무덤
42절 예수를 새 무덤에 두다
勇壯 아래마대 사람 요셉!
사람들은 자신이 모시는 상사나 군대에서 상관에게 최선으로 따르는 사람을 충직한 사람! 또는 나라의 왕이나 집권자에게 자신의 목숨을 걸고 섬기는 사람을 충신이라고 말들 한다. 반면에 죽음을 앞에 두었거나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에게 등을 돌린 사람들을 배신자라고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 들은 스승의 죽음을 앞에 두고 모두 달아났고, 베드로는 달아나진 않았지만 스승을 모른다고 하였다.
죽어있는 사람에게 충심을 보이기는 정말 어려운 일이다. 오죽하면 ‘정승(政丞)집 개가 죽으면 하객이 많지만, 정승이 죽으면 사람이 없다’는 속담이 생겨났겠는가?
평소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던 ‘아래마대 사람 요셉’이 있었다. 요셉은 십자가에 매달려 죽은 예수 그리스도의 시신을 자신이 수습하겠다고 용감하게 나셨다. 즉 정치적으로 왕으로 칭했다고 모함을 받고 죽은 예수 그리스도의 시체를 달라고 나선 것이다. 자신이 장사(葬事)를 치러드려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이런 용감한 사람을 세상은 용장이라고 한다.
성서에 나오는 인물들 중에는 아래마대 사람 요셉과 같이, 예수님 사후에 스승을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스데반, 베드로, 바울 등 제자들이 바로 그들이다.
왜 이토록 자신들의 죽음을 생각지 않고 스승을 섬길 수 있었던가? 그것은 스데반, 베드로, 바울 등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접붙임으로 생명을 받는 진리(眞理)란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곧, 자신들 안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되어 있는 그리스도 예수가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말이다. 그래서 바울은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하였다. 또한 “이제 내 육체가 사는 것은 나를 위하여 (십자가상에서 흘린 피)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이라고 고백을 한다(괄호 안은 필자 삽입). 이처럼 성서 속 인물들은 좌우 십자가의 죄인인 돌감나무! 자신들은 죽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자신들에게 흘려들어 그분의 피의 생명이 사는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루터와 칼뱅 같은 개혁자들은 성서를 잘 못 읽었기 때문에 대속 속죄의 구원론을 들고 나와 도리어 진리가 감추인 형국이 되었다.
우리는 여기서 깊게 생각해 보자!
−예수 그리스도는 나와 접목되어 내 안에 계신다는 것을 믿는다.
−예수 그리스도가 내 죄를 대신 지고 죽었다는 것을 믿는다.
위의 두 믿음 중 어떤 믿음이 더욱 나와 가까이 있는가?
물론, 내 안에 들어와 계시는 그리스도와 더불어 산다는 믿음이 더욱 가까이 있다.
이런 신앙이 곧 스데반의 신앙이요, 베드로의 신앙이며, 바울의 신앙이자 나의 신앙이다. 이리하여 나는 작은 예수 그리스도로 산다.
본문 공부
38절 “아래마대 사람 요셉이 예수의 제자나 유대인을 두려워하여 은휘하더니 이 일 후에 빌라도더러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기를 구하매 빌라도가 허락하는지라 이에 가서 예수의 시체를 가져 가니라.”
아래마대 사람 요셉은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 활동 할 때는 ‘유대인이 두려워 은휘(隱諱)하며’ 살았다. ‘은휘’라는 말의 사전적인 이미는 ‘꺼리어 감추거나 숨긴다’는 뜻이다. 아래마대 요셉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이면서도 은휘! 즉 제자란 것을 숨기며 살았다. 그러한 요셉이지만 예수 사후에는 용장(勇壯)으로 돌변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마음에 영접하여 주인으로 믿었기 때문이다. 이제까지는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의 생명의 근원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흘린 혈(血)가 자신의 생명의 근원이란 것을 믿게 되었다.
39절 “일찍 예수께 밤에 나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근쯤 가지고 온지라”
일찍이 밤에 예수 그리스도를 찾았던(요한복음 3장)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시체에 바르는 향료)을 가지고 왔다’ 니고데모도 아래마대 요셉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도 ‘은휘’하며 살았던 사람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 활동할 때에는 은휘하였던 두 사람이 예수의 시체를 내려다가 장사 지냈다는 말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흘린 피의 은혜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사람! 작은 그리스도로 우뚝 서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40절 “이에 예수의 시체를 가져다가 유대인의 장례법대로 그 향품과 함께 세마포로 쌌더라.”
예수의 시체를 가져다가 니고데모가 가져온 향품 즉, 몰약과 침향을 섞은 향료를 시체에 바르고 유대인의 장례법대로 세마포로 쌌다는 말이다.
41절 “예수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에 동산이 있고 동산 안에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새 무덤이 있는지라”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힌 부근에 동산이 있었는데, 동산에는 마침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었던 새 무덤이 있어서 그곳에 예수를 장사하였다.
아래마대 사람 요셉은 많은 돈을 들여 준비해 두었던 새 무덤에 예수를 장사하였다. 죽은 자! 곧, 그리스도 예수께 정성을 다 하는 모습을 본다.
42절 “이 날은 유대인의 예비일이요, 또 무덤이 가까운 고로 예수를 거기 두니라.”
유대인들에게는 유대인의 명절 예비 일에 시체를 십자가 위에 놓아두는 것을 부정 타는 일로 여기는 생각들 때문에 일어난 일들이다. 곧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시체를 십자가에 달린 것을 그냥 두고 보지 않는다는 사고에서 온 일들이다.
그러나 그 내면의 기사는 접붙임의 사실적 내용을 써지게 하기위하여 농부이신 하나님의 계획으로 이루어진 일들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리하여 요한사도의 기록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참 의미를 배우고 알게 된 것에 감사한다. 즉,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정확히 기록한 사도요한과 대화하면서 요한복음을 공부하는 나 자신이 복이 있고, 이 공부에 함께 하는 많은 분들이 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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