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공부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 죄

임중기 2013. 2. 10. 16:46

< 요한복음 공부 제 44과>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 죄

 

본문 말씀 9:35∼41

“예수께서 저희가 그 사람을 쫓아냈다 하는 말을 들으셨더니 그를 만나사 가라사대 네가 인자를 믿느냐?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그가 누구시오니까? 내가 믿고자 하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그를 보았거니와 지금 너와 말하는 자가 그이니라. 가로되, 주여! 내가 믿나이다! 하고 절하는지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소경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 바리새인 중에 예수와 함께 있던 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가로되 우리도 소경인가?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소경 되었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저 있느니라.”

 

본문 분해

35절 네가 인자를 믿느냐?

36절 그가 누구시오니까?

37절 너와 말하는 자가 그이니라

38절 주여! 내가 믿나이다

39절 내가 심판하러 왔다

40절 우리가 소경인가?

41절 너희가 본다고 하니 죄가 있다

 

바리새인과 사람들의 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바리새인들에게 진리를 말하는 예수 자신은 알아보지 못하면서 저들이 본다고 하니 죄가 그저 있다고 하셨다. 이 말씀은 곧 ‘진리를 보지 못하는 것이 죄’라는 뜻이다. 즉, 우주 만물의 생명의 근원인 창조자 하나님의 아들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 죄라는 말씀이다.

 

 사람은 일상에서 시기, 질투, 사기, 미워하는 것, 강도, 살인, 간음 등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죄를 범하며 살아가고 있지만, 이런 죄들은 세상 사람들의 보편적 죄이므로 나(我)는 큰 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세상에서 죄를 범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단 하나도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산상설교에서처럼 “미워하는 마음이 곧 살인”이요, “음욕을 품는 것이 간음”이라고 할 때에 사람을 미워하거나, 아름다운 여인을 보면 마음과 얼굴이 일시적이라도 그쪽으로 향하며 음욕을 품는다면 그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의 심판대에 설 수 있을까? 이 세상에서 죄인 아닌 사람은 하나도 없다고 선견자 이사야와 증언자 바울이 선언하고 있다.

 

 그런데 예수께서 “너희 바리새인들이 죄가 있다”고 하신 말씀은 인류에게 자신을 보이시려고 수백 년 전부터 「실로암 못」을 있게 하시고, 소경의 아버지로 하여금 소경 아들을 낳게 하셔서 그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심으로 온 인류가 깨달아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오신 아들을 믿게 하여 십자가상에서의 죽음을 통해 ‘인류에게 새로운 하나님의 생명을 주시기 위함을 알게 하려 하시는 하나님의 아들’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을 죄로 규정하고 계신다. 특히 오늘 본문에서는 진리의 근원이신 하나님의 아들을 알아보지 못하면서 본다는 것에 대하여 “너희가 소경 되었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저 있느니라”고 하는 말씀이다. 인류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어 그 생명으로 다시 살게 하는 생명의 근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한 것이 죄라는 말씀이다. 그와 달리 소경으로 난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주여 내가 믿나이다.” 하며 구원의 대열에 서게 된다.

 

 문제는 십자가상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두 강도 중 한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생명으로 믿었기에 구원의 길을 걸었고, 한 사람은 믿지 못하여 추락하는 길로 갔는데(누가복음 23:39∼43), 우리 인류-나 자신은 예수 그리스도와 죽음으로의 만남이다. 죽을 때는 강도인 내가 죽고, 살 때는 그리스도의 생명을 영접(접붙임으로의 만남)함으로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으로 사는 복음이다.

 

본문 공부

 

 35절 “예수께서 저희가 그 사람을 쫓아냈다 하는 말을 들으셨더니 그를 만나사 가라사대 네가 인자를 믿느냐?”

‘종교’란 피도 눈물도 없는 단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날 때부터 소경이 되었던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보내심으로 ‘실로암’ 못에서 눈을 씻고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되었는데, 축하는 해주지 못할지언정 유대교 집단에서 출교(黜敎)시키는 일을 저질렀다. 즉, 소경이었던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께 고침을 받았다는 것이 죄로 인정되어 출교를 당한 것이다. 예수는 바른 말을 하여 유대교 사람들을 화나게 하였다고 하더라도, 눈뜸을 받은 사람은 무슨 잘 못이 있는가? 종교는 유대교뿐 아니라 현대에 이르러서도 자신들에게 해가 될 사람은 서슴치 않고 출교를 시키곤 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소경이었던 사람을 만나 “네가 인자를 믿느냐?” 하며 물으셨다.

 

 36절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그가 누구시오니까? 내가 믿고자 하나이다.”

예수께서 소경이었던 사람에게 “네가 인자를 믿느냐?” 라고 묻는 말씀에 그는 “주여! 그분이 누구십니까? 내가 믿고자 합니다.” 라고 대답한다. 자기 눈을 뜨게 해준 사람이 도대체 누구일까? 난 그 분을 만나 뵙고, 그 분을 믿겠다는 간절함이 들어있다.

 

 37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그를 보았거니와, 지금 너와 말하는 자가 그이니라.”

눈 뜬 사람이 세상을 처음으로 보면서 종교 지도자를 만나 출교를 당하고 실망을 금 할 수 없는 그 때에, 예수 그리스도가 눈 뜬 사람 앞에 서서 말씀을 하고 계신다. “네가 그를 보았다. 지금 너와 말하고 있는 내가 바로 그다.” 이 말은 바로 “내가 너를 눈 뜨게 하였다.”는 말이겠다.

 

 38절 “가로되 주여! 내가 믿나이다! 하고 절하는지라”

감격에 찬 말이다. “내가 너를 눈 뜨게 하였다”는 예수님 말씀에 “주여! 내가 믿습니다!” 하면서 절을 한다.

날 때부터 소경이어서 암흑의 세월을 살아온 자신의 눈을 뜨게 해주신 그리스도께 예를 다하여 절을 하는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진다.

여기서 절의 의미는 크다고 하겠다. 우주 만물의 창조자 되시며, 만물의 생명의 근원이요, 만왕의 왕이신 그리스도를 경배하는 절이기 때문이다.

 

 39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소경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

만왕의 왕 자격으로 경배(敬拜)를 받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비로소 세상에 오신 까닭을 말씀하신다.

첫째, 진리를 보지 못한 사람을 보게 하려 함이요,

둘째, 진리를 보지 못하면서 본다고 하는 자들을 소경되게 함이다.

 

 40절 “바리새인 중에 예수와 함께 있던 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가로되 우리도 소경인가?”

땅의 사람! 지구 위의 사람들은 모두가 진리를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왜 그럴까? 선견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사람이 죄를 범하여 모두가 “들포도나무로 전락하였기 때문”이다. 때문에 어느 누구도 진리를 보지 못한다는 말이다. 즉, 진리면에서는 누구나 소경이라는 말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것은 십자가 사건을 통해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거듭나게 하여 진리를 보는 눈으로 개조하려 함인데, 바리새인들은 자기네가 진리에 밝은 것으로 착각하여 이미 구원받았으니 죄가 없지 않느냐고 자기끼리 묻고 있다.

 

 41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소경 되었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저 있느니라.”

들포도나무이면서도 참포도나무로 착각하고 있는 바리새인들에게는 접목이 필요하지 않아 아버지께서는 접목 대상에서 버리실 것이다. 하여 본다고 하는 저들은 영원히 진리를 보지 못할 것이다.

바리새인끼리의 말을 들은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진리를 보지 못한다고 고백하면 진리를 보는 눈으로 바꿀 수가 있다. 그런데 너희 바리새인들은 너희 스스로 본다고 하니 너희! 눈은 개조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너희 죄가 그저 있다’는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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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공부 발표 2013년 2월 10 (비매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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