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공부

그 사람처럼 말한 사람은 없었다.

임중기 2012. 5. 9. 19:37

< 요한복음 공부 제35과>

그 사람처럼 말한 사람은 없었다.

 

본문 말씀 7:45-53

“하속들이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로 오니 저희가 묻되 ‘어찌하여 잡아오지 아니하였느냐?’ 하속들이 대답하되 '그 사람의 말하는 것처럼 말한 사람은 이때까지 없었나이다.' 하니 바리새인들이 대답하되 너희도 '미혹되었느냐? 당국자들이나 바리새인 중에 그를 믿는 이가 있느냐. 49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 무리는 저주를 받은 자로다.' 그 중에 한 사람 곧 전에 예수께 왔던 니고데모가 저희에게 말하되 '우리 율법은 사람의 말을 듣고 그 행한 것을 알기 전에 판결하느냐?' 저희가 대답하여 가로되 '너도 갈릴리에서 왔느냐? 상고하여 보라. 갈릴리에서는 선지자가 나지 못하느니라 하였더라.' 다 각각 집으로 돌아가고

 

본문 분해

45절 왜 잡아오지 아니하였느냐

46절 그 사람처럼 말한 사람은 없었다

47절 너희도 미혹되었느냐

48절 바리새인 중에 그를 믿는 이가 있느냐

49절 저주를 받은 자

50,1절 그의 말을 알아보고 판단하라

52절 갈릴리에서는 선지자가 나지 않는다

53절 각각 집으로 가다

 

그 사람처럼 말한 사람은 없었다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의 하속들이 예수를 잡아오라는 임무를 받고 갔다가 빈손으로 돌아오니 그들을 보낸 사람들이 왜 예수를 잡아오지 않았느냐며 질책을 한다. 이에 하속들은 “그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말한 사람은 이때까지 없었나이다.” 하며 본 대로 들은 대로 보고를 한다. 그런데 옛날이나 오늘날이나 종교 위정자, 소위 종교지도자들은 진실된 말을 듣지도 보지도 않으려 한다. 들었다 하여도 자기들의 생각이나 의견과 다르면 일부러 외면하며 본문에서처럼 말 꼬리나 잡으려고 한다.

 

 당시의 예루살렘 위정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을 직접 들었다 하더라도 못 들은 척 하였을 것이다. 왜? 자신들이 먼저 출교 대상이 될 수 있고, 비판이 무서웠을 테니까. 그것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같다. 본론에서 벗어나지만, 많은 사람들은 우리가 공부하는 < 요한복음 공부>의 내용을 긍정한다고 격려를 해오는 분들이 상당히 있다. 그러나 공개적인 자리에서 긍정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직 없다. 왜? 여론상 민감한 부분에 대하여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가는 자칫 비판의 여론에 휘말릴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서 먼 훗날에 필자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 요한복음 공부>를 접하고 수긍한다면 공개적으로 자신들의 마음을 밝혀 알릴 것이고, 그렇게 진리는 세상에 전해질 것이다.

본론으로 돌아가서, 알아듣고 말하는 위정자가 있다하여도 그 듣지 못하는 위정자들의 힘에 압제되어 자신들의 의견을 관철시키지 못하고, 스쳐가는 소리뿐일 때가 종종 있다. 이것을 분명하게 보여 주는 말이 “우리 율법은 사람의 말을 듣고 그 행한 것을 알기 전에 판단하느냐?” 라는 니고데모의 절규 섞인 말에도 불구하고 그 소리는 스쳐가는 소리로 끝나고 있다. 그러나 하속들이 보여준 것 같이 민중은 소리를 들어 알고 있다. “그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말한 사람은 이때까지 없었나이다.”라는 말 가운데는 ‘왜 그 사람을 잡아오라고 하느냐?’는 불만이 들어있다.

 

 그렇다. 진리의 말은 민중이 듣고, 민중 속에서 진리의 말이 나오는 것이다. 인류에게 하늘의 생명을 주실 하나님의 생명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도 다윗의 동네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셨는데 베들레헴의 뜻은 떡집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하나님의 아들이 떡집에서 생명의 떡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성령의 잉태로 오셨다. 이 떡은 인류를 개조(改造)하는 생명의 떡이다. 인류를 개조하는 생명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소식을 천사로부터 처음 전해 들었던 사람들도 종교지도자가 아닌 들에서 양을 치는 목자들이였다(눅2:8-14).

 

 절대적으로 종교 지도자들에게서는 진리가 발견되지 않는다. 왜 진리를 보지 못하는가? 그것은 조직 사회이기 때문이다. 제사장이 있고, 장로가 있고, 집사가 있기에 이들의 뜻을 맞추어 조직을 이끌어가야 한다. 이러한 교회라는 조직에서 직함을 탈피하여 나 혼자 설 때에 하나님의 은혜는 임하는 것이다. 신앙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본문 공부

 45절 “하속들이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로 오니 저희가 묻되 ‘어찌하여 잡아오지 아니하였느냐?’”

심부름을 갔던 하속들이 돌아왔다. 그런데 잡아오라는 예수를 잡아오지 않고 빈손으로 돌아온 것이다. 하여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어찌하여 잡아오지 아니하였느냐며 언성을 높인다.

 

 46절 “하속들이 대답하되 ‘그 사람의 말하는 것처럼 말한 사람은 이때까지 없었나이다’ 하니”

소리를 높이며 다그치는 상전들에게 심부름을 갔던 하속(下屬)들이 대답한다. <창세(創世)이후로 지금까지> 이분 같이 말한 사람은 없었는데, 어찌하여 잡아오라고 하느냐는 질문형의 대답이다.

 

 47절 “바리새인들이 대답하되 ‘너희도 미혹되었느냐?’”

하속들의 말을 듣고, 화가 난 바리새인들이 ‘너희도 미혹되었느냐’고 책망형의 질문을 한다. 너희는 우리 편이 아니냐? 그런데 ‘미혹되었느냐’는 질문이다.

48절 “당국자들이나 바리새인 중에 그를 믿는 이가 있느냐?”

여기서 두 집단이 구분되어 나온다. 곧 ‘당국자들’과 ‘바리새인’이다. “참 종교”란 당국자-즉, 정치와는 분리되어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당국자들과 유대교회 위정자들이 한 통속이 되어 있음을 자신들 스스로 보이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당국자들이 종교인과 한 통속이 되면 서로가 상대의 부정을 눈감아주며 각종 부조리를 저지르고 있다. 예수를 잡아 죽이는 데에도 두 집단의 협력이 있었지 않는가.

두 집단이 예수를 그대로 둔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우선, 유대는 로마의 식민지였으므로 당국자들은 지배국인 로마제국으로부터 심한 질책을 받게 된다.

 

 다음, 예수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유대교회의 바리새인들이나 제사장들은 정치적으로나 종교적으로 신분의 위협을 받게 된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를 제거의 대상으로 삼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두 집단 사람들은 예수를 잡아오지 않은 하속들에게 힐난성 질문을 던지고 있다. “당국자들이나 바리새인 중에 그를 믿는 이가 있느냐?”

 

 49절 “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 무리는 저주를 받은 자로다”

위에서 본 것과 같이 두 집단! 곧 당국자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를 잡아 죽여야 하는데, 잡아오라고 보낸 하속들이 잡아 오지는 않고, 오히려 “그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말한 사람은 이때까지 없었나이다.” 하므로 “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 무리는 저주를 받은 자로다.” 하며 욕을 한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이 말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곧 “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 무리는 저주를 받은 자”라고 한 이 말은 위정자들과 바리새인이 자기네 시각(視覺)의 잣대로 심판의 말을 한 것이다. 참으로 두려운 일들이다. 누가 종교 위정자들에게 심판의 권한을 주었는가? 저들은 심판의 권한을 받지 않았어도 자신들이 심판관인 하나님이 되어있다. 하나님의 아들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도 간음한 여인에게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겠다’고 하셨는데 에루살렘 위정자들은 함부로 심판을 한 것이다.

 

 50절 “그 중에 한 사람 곧 전에 예수께 왔던 니고데모가 저희에게 말하되”

평소에 예수를 메시야 그리스도로 믿고 예수님을 찾은 적이 있던 니고데모가 동료들의 말에 대하여 한 마디 말을 한다.

 

 51절 “우리 율법은 사람의 말을 듣고 그 행한 것을 알기 전에 판결하느냐”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어보지도 않고 판단하여 예수를 잡아오라고 한 바리새인들에게 니고데모가 율법을 들어 이야기를 한다. “너희가 예수의 말을 들어보지도 않고 판단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그러나 이 니고데모의 바른 지적은 바리새인들에게 먹혀들지 않고 오히려 공격을 받는다.

 

 52절 “저희가 대답하여 가로되 ‘너도 갈릴리에서 왔느냐? 상고하여 보라. 갈릴리에서는 선지자가 나지 못하느니라 하였더라.’”

니고데모의 바른 지적에도 불고하고 당국자들과 바리새인들은 ‘너도 갈릴리에서 왔느냐? 갈릴리에서는 선지자가 나오지 않는다.’고 하며 지역적인 말로 니고데모를 공박한다. 메시야는 베들레헴에서 나온다고 했지, 갈릴리에서 나온다는 말은 없다는 말이다. 결국 외로운 니고데모의 말은 아무 힘도 발휘하지 못하고 만다.

 53절 “다 각각 집으로 돌아가고”

 

천우 예배모임 안내

 때 : 매월 두 번째 일요일 오전 10시 30분

: 스피치와 변화 4층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동 6가 1-15번지 (영등포 시장 로터리)

 

 1부 예배모임 사회 : 임효성

말씀 하시는 분 : 이기영 목사님, 한장희, 임중기.

2부 신앙 간담 사회 : 정인순

 

연락처 : 정인순 (011-768-8865)  임중기 (010-6346-3736)

 

매월 (2번째 일요일) 오전 10시30분시 예배모임이 있습니다.

 10시 오시는 대로 돌아가며 성경을 몇 귀 절씩 읽고 30분에 시작합니다. 모임이 끝나면 저녁을 같이 하고 해산합니다.

 

지하철 : 1호선 이용시 영등포역에서 하차한 후 롯데백화점 방향으로 나와 신세계 백화점과 경방필 백화점을 지나 영등포시장 로터리 사거리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면 ‘스피치와 변화’ 간판이 보임

지하철 5호선 이용시 : 영등포시장역에서 하차한 후 4번 출구로 나와 200미터 직진 후 우측에 모닝글로리 문구점을 끼고 우회전 하면 ‘스피치와 변화’ 간판이 보임

주차장은 ‘영남 주차장’이용

 

중국어를 배웁시다.

 2012년 4월 8일 모임부터 예배 후에 중국어 공부 시간을 갔습니다. 천우 모임에 나오시는 이정혜 선생이 중국어 선생이신데 천우모임 식구들에게 중국어를 가르쳐 주시겠다 하시여 천우모임 식구들이 배우기로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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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공부 발표 2012년 5월 10 (비매품)

E-mail : imjoongki@hanmail.net http://cafe.daum.net/1000wooo

電話 010-6346-3736 요한복음공부 발표인 임 중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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