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공부 15>
인류와 하나 되기 위하여 하늘로부터 오신 예수
본문 말씀 3:31∼36
“위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위에 계시고 땅에서 난 이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느니라. 하늘로서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나니 그가 그 보고 들은 것을 증거 하되 그의 증거를 받는 이가 없도다. 그의 증거를 받는 이는 하나님을 ‘참되시다’ 하여 인 쳤느니라. 하나님의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없이 주심이니라.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만물을 다 그 손에 주셨으니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본문 말씀 분해
31절 하늘에서 오신 분은 만물위에, 땅에서 난 사람은 땅에 속함
32절 하늘의 증거를 받는 이가 없음
33절 하늘의 사람의 증거를 받는 자는 아들로 인정
34절 하나님의 성령을 한량없이 받는 분
35절 하늘 아버지는 아들에게 전권을 주심
36절 하늘 아들을 믿는 자에게 영생을 주심
하늘로부터 오시는 이는 우주 만물 창조자
요한은 복음서 머릿글에서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1:1-3)고 하였습니다. 요한은 태초 즉, 천지창조(天地創造) 때부터 계셨던 예수를 이야기하고, 오늘 공부하는 <하늘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萬物) 위에 계신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밑줄 부분의 “그”는 예수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한 바울은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롬 11:36)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인류가 다른 점
◎ 예수는 하늘에 속해 있고, 인류는 땅에 속해 있습니다.
◎ 예수는 우주 만물의 창조자이며, 인류는 피조물입니다.
◎ 예수는 거룩하고, 인류는 죄로 물들어 있습니다.
본문 말씀과 같이 처음부터 하늘로부터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인류(나, 우리)와는 다른 이원적인 관계였습니다. 이 이원적 관계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인류인 나와 우리를 하늘 백성으로 바꾸기 위하여 오셨던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께서는 우리를 어떻게 바꾸셨습니까? 십자가 사건으로 예수의 생명을 나누어 받음으로써 예수님과 함께 부활하여 하늘백성으로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또, 증언자 바울 선생은 골로새서에서 요한복음과 같은 증언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그(예수)의 육체(肉體)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和睦)케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하나님)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노라.”(골1: 22,23)
또한 바울 선생은 갈라디아서 3장 27절에서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洗禮)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세례’는 ‘십자가상에서 예수와 함께 죽는 것’을 뜻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者)’ 이 부분을 일본의 신(新) 공동번역 성서(이하 일본어 성서)에서는
“コリストに結ばれたあなたがたは皆キリストを着ているからです”(갈3:27)라고 하였는바, 밑줄 부분의 ‘結ばれた’(무스바레다)는 11과에서 공부한 대로 ‘맺어지다’ ‘육체적(肉體的) 교제(交際)를 하다’ ‘결혼(結婚)’ ‘만남’ 등의 뜻이 있는데, 여기서는 “예수”라는 전제가 주어지므로 ‘하나님의 자녀(子女)’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일본어 성경을 눈여겨 볼 것은-증언자 바울의 “세례”라는 말에도 (結ばれた)‘무스바레다’를 쓰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기 위하여 예수의 생명을 받는 데에도 (結ばれた)‘무스바레다’를 쓴 다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新 被造物)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5:17)
“たからキリストと結ばれる人はだれでも新しく創造された者なのです
“キリストと結ばれる人は”(고후5:17)
그런데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에서 ‘안에’의 번역(飜譯)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안에”와 관련한 일본어 성서에는 아래와 같이 되어있습니다. “キリストと結ばれる人は”(그리스도와 맺어지다)인데, 17절 전체는 “그리스도와 맺어진 사람은 누구든지 새로운 피조물”이라는 것입니다.
이로 미루어 보면 십자가의 사건이 대속(代贖)을 위한 사건이라기보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生命)을 받아 새롭게 태어나는 ‘접목(椄木)으로의 만남’을 위한 사건이라고 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십자가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우리에게 들어와 ‘접목(接木)의 만남’ 또는 ‘생명(生命)의 근원(根源)으로서의 예수 영접’(요1:12)으로 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로마 병정에게 잡히시기 직전에 하나님께 드린 기도에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하나님과 예수)가 하나가 된 것 같이 저희(인간)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곧 내가 저희 안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저희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요한 17:22,23)이라고 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그리스도인’은 추상(抽象)적인 믿음이 아니라. 접붙임과 영접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고 실질적(實質的)으로 믿어야 하겠습니다.
오늘 공부(3:31∼36)의 결론을 먼저 말하면, “위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신 분인데, 땅에서 난 이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사람에게 십자가상에서 하늘에 속한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주어 하나가 되게 하시려고 오신 것입니다. 결국 예수는 땅에 속한 우리를 하늘에 속한 당신과 하나 되게 하기 위하여 십자가상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본문 공부
31절 “위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위에 계시고 땅에서 난 이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느니라. 하늘로서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나니”
하늘로부터 오신 예수는 만물 위에서 만물을 운행하시고 주관하시는 주인이며, 땅에서 난 사람은 아담의 죄로 말미암아 하늘나라를 가기는커녕 볼 수도 없는 죄인들입니다. 만물의 주인이신 예수는 하늘의 생명인 당신의 피로 인류인 나에게 주시려고 오신 것입니다.
32절 “그가 그 보고 들은 것을 증거 하되 그의 증거를 받는 이가 없도다.”
하늘로부터 오신 분이 하늘에서 보고 들은 것을 증거 하시지만, 그분의 증거를 받는 이가 없다는 한탄입니다.
33절 “그의 증거를 받는 이는 하나님이 참되시다 하여 인 쳤느니라.”
그분의 증거를 받고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참되심을 믿고 자신의 마음속으로 “인”을 쳤다고 하였습니다. “인 쳤다”는 무슨 말입니까? 마음속으로 확정(確定)하였다는 말입니다. 굳게 믿는 믿음의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믿어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을 이룬다’는 말입니다.
34절 “하나님의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없이 주심이니라.”
“하나님의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하나님이 보내신 분(또는 하나님의 품속에 계셨던 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곧 하나님이 하신 말씀으로 믿어도 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을 칭하여 부를 때에 성부, 성자, 성령이라고 하는데, 그리스도인이 믿음에 대한 표현의 일환으로도 성부 성자 성령으로 하는 것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은 같은 한분으로 일인칭입니다.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없이 주심이니라.” 성령(聖靈)은 성스러운 하나님의 영(靈)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보내신 예수에게 한량없는 성령을 주고 계십니다.
35절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만물을 다 그 손에 주셨으니”
앞 절에서 예수님은 “성령이 한량없도록 충만하신 분”이라고 하였습니다만, 이 절에서는 ‘아버지가 아들을 사랑하여 만물을 다스리는 전권을 아들 손에’ 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이 생각 할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권한’을 적는다면 크게 두 가지일 것입니다.
◎: 십자가상에서 죽지 않을 권한
◎: 인류를 판단하실 심판의 권한
즉, 죽지 않아도 되는 분이 십자가상에서 죽었고, 인류에게 하늘의 생명(참 포도나무 가지)을 주셨는데도, 이 귀중한 일들을 무시하고 믿지 않는 인간들을 심판할 권한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36절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아들을 믿는 자에게 영생이 있다’는 말씀에는 어떤 의미가 들어있습니까? 있다! 없다! 의 문제입니다. 여기서 다시 십자가에서 죽은 강도를 예로 든다면 인류 모두의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2000년 전에 십자가상에서 강도가 죽을 때에 인류 모두가 함께 죽은 것으로 믿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강도와 같은 아담 후손의 죄 된 몸이 죽고, 그곳에 예수의 하늘의 생명을 접붙임 받아 다시 살 때는 예수의 생명으로 하늘 백성으로 사는 것입니다. 있다! 없다!의 문제는 믿음으로 같이 죽어, 자신(自身)의 죄 된 몸은 죽어 없고, 하늘의 생명을 접붙임 받아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증언자 바울은 ‘너희 안에 그리스도 예수의 령이 없으면 너희는 버려진 자들이다’ 또는 ‘너희 몸이 성령의 전(殿)인 줄 알지 못하느냐’ 하였습니다.
계시록을 기록한 요한은 3장 20절에서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音聲)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더불어 살리라) 한 것입니다.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 이 말은 무슨 말씀입니까?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의 뜻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者)’란 뜻으로, 예수가 십자가상에서 피 흘린 피의 생명을 인류에게 주신 사실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만물 위에 계신 분이 이 땅에 오셔서 자신의 생명을 십자가상에서 인류에게 주셨는데 이것을 순종으로 믿지 않는 자는 십자가상에서의 희생을 헛되이 하는 자(者)로 당연히 심판의 대상이 된다는 것입니다.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십자가상에서 피를 흘려 ‘영생의 생명을 주셨는데’ 이 사실을 믿지 못하므로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다는’ 것입니다. 결론으로 말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믿지 못한 것’에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다는 것입니다.
글을 쓰는 사람과 글을 읽는 사람
글을 쓰는 사람은 속어를 사용하여 쓰지 말고, 글을 읽는 사람도 속어의 글을 읽지 말아야 할 것이다. 속어의 글은 음식으로 말하면 오염 된 음식과 같다. 오염된 음식은 다른 사람의 건강을 해치는 역할을 한다. 속어의 글을 읽으면 읽는 사람의 정신이 오염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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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공부 발표 2010년 7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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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ail : imjoongki@daum.net http://cafe.daum.net/1000wo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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電話 010-6346-3736 요한복음공부 발표인 임 중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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