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공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다시 태어난 나의 부활신앙 (1)

임중기 2017. 1. 11. 20:37

< 요한복음 제 88>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다시 태어난 나의 부활신앙 (1)

 

본문 말씀 20:110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돌이 무덤에서 옮겨간 것을 보고 시몬 베드로와 예수의 사랑하시던 그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되 사람이 주를 무덤에서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겠다하니 베드로와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무덤으로 갈쌔 둘이 같이 달음질하더니 그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먼저 무덤에 이르러 구푸려 세마포 놓인 것을 보았으나 들어가지는 아니하였더니 시몬 베드로도 따라 와서 무덤에 들어가 보니 세마포가 놓였고 또 머리를 쌌던 수건은 세마포와 함께 놓이지 않고 딴 곳에 개켜 있더라. 그 때에야 무덤에 먼저 왔던 그 다른 제자도 들어가 보고 믿더라. (저희는 성경에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신 말씀을 아직 알지 못하더라.) 이에 두 제자가 자기 집으로 돌아 가니라.”

 

본문 분해

1 절 어두울 때에 무덤에 간 막달라 마리아

2 주를 무덤에서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겠다

3,4절 두 제자, 달음질로 무덤에 다다르다

5,6절 세마포만 놓인 무덤

7,8절 두 제자시신 없어짐을 보고 믿더라

9 절 예수의 부활을 예고한 성경말씀을 알지 못한 제자들

10절 두 제자집으로 돌아가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다시 태어난 나의 부활신앙 (1)

부활절이 가까워지면 많은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이야기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축하하고 그 날을 기념한다. 하지만 참 의미는 알려 하지 않는다. 부활의 참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참감나무로서 다시 사는 부활의 몸체도 참감나무였다. 그러나 우리 인류-, 예수 그리스도가 매달리신 십자가 좌우에 강도로 매달린 우리는 십자가에서 죽을 때는 돌감나무였던 것이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피 흘려주심으로 그 피를 받아 부활할 때에는 참감나무로서의 부활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의미보다 더욱 큰 의미의 부활은 곧 나 자신의 부활이다.

이것을 바울 사도는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하였다. 피조물이라는 뜻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새로 지음을 받았다는 뜻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수제자 베드로는 십자가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한다고 하였다(1:2). 이렇게 나 자신 한사람, 한사람의 부활의 의미가 더욱 큰데 나 자신의 부활에 감사는 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만 축하한다. 그러나 아니다. 내 안에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으로서의 부활! 이런 은혜를 내려주신 주 하나님 아버지께 대한 감사의 폭발이 부활의 의미이다. 생명의 피를 흘려주신 예수 그리스도께 감사를 돌리며, 그래서 늘 감사와 감격의 찬미를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요 부활 신앙이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세계 어디서나 그리스도교회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만 포인트를 두고 부활의 의미를 생각하며 축하하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다. 바울 시대의 초대교회 이후 인류의 부활, 인류의 갱신은 잊은 채로 2000여 년이란 세월이 부활의 참 의미는 잊은 채 무의미하게 흘러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도 중요하지만, 예수께서 흘리신 피에 의한 우리 인류의 갱신(更新)인 부활이 더욱 중요하다 하겠다.

이와 같은 명백한 부활의 의미를 알지 못한 저 종교 위정자들은 세례라는 의식으로 인간들의 죄를 씻는다는 가르침을 계속하고 있으니, 과학이 끝 모르게 발달하고 있는 21세기의 젊은이들이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검은 고양이를 앞에 두고 흰 고양이가 되라고 백날, 천날 세례라며 씻어주어도 검은 고양이는 절대로 흰 고양이가 될 수 없다. 오직 길이 있다면 그 길은 종()의 개량(改良) 뿐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류의 새 생명의 근원이시다.

 

본문 공부

1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돌이 무덤에서 옮겨간 것을 보고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쉬신 날로, 유대인들 전체가 예배하며 쉬는 날이다. ‘안식 후 첫날이란 곧, 활동을 하지 않는 안식일을 보내고 활동 시작의 첫 날을 말하는데 막달라 마리아는 그 첫날이 밝아오기도 전에 예수의 무덤에 왔다는 말이다. 마리아가 와서 보니 무덤을 막았던 돌이 무덤에서 옮겨져 있는 것을 보고 그녀는 놀란다.

 

2시몬 베드로와 예수의 사랑하시던 그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되 사람이 주를 무덤에서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겠다 하니

무덤의 돌이 옮겨진 것을 보고 놀란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의 제자인 시몬 베드로와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사람이 주를 무덤에서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겠다 알린다.

여기서 예수의 사랑하시던 다른 제자란 요한 사도를 말한다.

 

3,4 베드로와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무덤으로 갈쌔 둘이 같이 달음질하더니 그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먼저 무덤에 이르러

막달라 마리아의 말을 들은 두 제자들이 놀라 무덤을 향해 달렸고, 다른 제자 즉, 요한이 베드로보다 먼저 무덤에 도착했다. 두 제자는 달려가면서도 선생님의 시신을 누가 왜 가져갔을까? 하고 많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5,6 구푸려 세마포 놓인 것을 보았으나 들어가지는 아니하였더니 시몬 베드로도 따라 와서 무덤에 들어가 보니 세마포가 놓였고

무덤에 먼저 도착한 요한이 구푸려 세마포 놓인 것을 보았으나 무덤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고, 베드로가 도착하고서야 함께 무덤에 들어가 보니 세마포만 놓여있는 것을 본다.

 

7,8 또 머리를 쌌던 수건은 세마포와 함께 놓이지 않고 딴 곳에 개켜 있더라. 그 때에야 무덤에 먼저 왔던 그 다른 제자도 들어가 보고 믿더라.”

무덤 안에는 머리를 쌌던 수건과 세마포가 함께 놓이지 않고, 수건은 딴 곳에 개켜져 있는 것을 보고서 두 제자는 예수께서 그곳에 없다는 것을 확실히 믿었다는 기사이다.

 

9 “(저희는 성경에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신 말씀을 아직 알지 못하더라.)”

두 제자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면서 인류에게 새 생명의 피를 흘려주고 죽어야 한다는 말씀이 성경에 예고되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는 기사다. 또한 생명의 피를 흘려주고 다시 부활한다는 것도 알지 못했음을 설명해 주고 있다.

 

10 이에 두 제자가 자기 집으로 돌아 가니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근원적인 일들을 알지 못한 두 제자는 스승의 시신을 보지도 못하고, 왜 없어졌는지도 알지 못한 채 힘없이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이 그려지는 대목이다.

 

여기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깊이 생각할 게 있다.

기사에서처럼 아무리 뛰어나다는 두 제자도 예수 그리스도의 근원을 알지 못하면 힘없이 뒤돌아 설 수밖에 없음을 우리가 본다.

그런데 그리스도교를 사칭한 사이비 교회들에서는 인류의 구원문제를 대속이라고 속이고, 세례로 죄를 씻어야 한다고 속여 왔다. 이것이 개신교 500여년의 역사다. 그래서 오늘날 이 땅에 개신교회가 힘이 없고, 희망이 없는 쇠락의 길로 접어든지 오래이다. 오죽했으면 개()교회라는 말이 나왔을까.

 

예수 그리스도의 영접은 나의 생명의 근원으로 영접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와 내가 접붙임으로 만나면서 나는 죽어 없어지고,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삶이라는 신앙이라야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우뚝 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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