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공부

그 날에는 너희 기쁨을 빼앗을 者가 없느니라.

임중기 2015. 10. 7. 19:07

< 요한복음 공부 제 73과>

 

그 날에는 너희 기쁨을 빼앗을 者가 없느니라.

 

본문 말씀 16:16∼24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신대 제자 중에서 서로 말하되 우리에게 말씀하신바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시며 또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하신 것이 무슨 말씀이뇨? 하고 또 말하되 ‘조금 있으면’ 이러한 말씀이 무슨 말씀이뇨?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알지 못하노라 하거늘 예수께서 그 묻고자 함을 아시고 가라사대 내 말이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므로 서로 문의하느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겠으나 세상은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이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을 인하여 그 고통을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느니라.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 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본문 분해

16절 자신의 죽음을 말씀하시다

17절 스승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는 제자들

18절 제자들이 서로 묻다

19절 제자들의 마음을 아심

20절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나 세상 사람들은 기뻐하리라

21절 기쁨의 비유

22절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다

23절 구하면 주시리라

24절 구하라, 기쁨이 충만하리라

 

그 날에는 너희 기쁨을 빼앗을 者가 없느니라

예수께서는 자신이 죽을 때가 이르는 줄 아시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신다.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그러자 제자들 사이에서는 이 말씀이 무슨 말씀인가? 하며 서로에게 묻는다.

이러한 모습을 보신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향하여 “내 말이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겠다,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므로 서로 문의(問議)하느냐?” 하시며 “너희는 근심하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고 하신다. 그리고 다시 예를 들어 말씀하신다.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이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을 인하여 그 고통을 다시 기억지 아니하느니라” 라고.

그런데 왜 여기에서 여인들의 해산의 고통을 예로 들고 계실까?

그것은 오늘 공부의 제목처럼 ‘그 날에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기 때문이다.

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의 길! 십자가상에서 흘려주신 생명의 피를 받아 그 생명으로 다시 사는 신앙의 삶은 새 생명의 삶이기에 그 기쁨보다 큰 기쁨이 없고, 그래서 ‘그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다’고 하신 것이다.

여기에서 예를 들어보자. 누군가가 천국에 가는 표를 받았다면 그 표는 다시 빼앗길 수도 있다. 힘 있는 자에게 그 표를 강취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십자가상에서 흘려진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의 죄로 물든 몸이 절단된(강도의 다리 끊어짐) 곳에 흘러들어 우리 몸은 그리스도와 혈통이 같게 되어 빼앗을 자가 없다는 말이다. 전에는 들포도나무였던 나를 농부이신 하나님이 십자가상에서 접붙임의 일을 하셨고, 그 접붙임을 받은 우리 그리스도인은 생명의 근원이신 그리스도의 생명을 갖게 되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리스도인은 ‘믿음’이라는 징표를 갖고 있다. 우리 몸에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흐르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를 생명의 근원으로 영접한 믿음이 있다. 이 믿음만 있어도 되는데, 그리스도라는 가지의 생명까지 우리 몸 안에 같이 살고 있다. 그래서 ‘빼앗을 자가 없다’고 하신다.

오늘 말씀도 앞으로 있을 십자가상의 죽음의 의미를 제자들에게 가르치기 위하여 하신 말씀이라고 하겠다.

 

본문 공부

16절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신대”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조금 있으면 십자가상에서 죽게 됨으로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한다’고 하신다. 그런데 죽으러 가는 길이라는 것을 직접적으로 말씀하시지 않았기 때문에 제자들이 알아듣질 못한다. 또한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는 말씀 곧 자신의 부활을 예언하셨는데, 제자들은 스승의 죽음도 생각지 못하고 있는 참에 부활이란 꿈에서도 생각지 못할 일이다.

17절 “제자 중에서 서로 말하되 우리에게 말씀하신바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시며 또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하신 것이 무슨 말씀이뇨 하고”

예수께서 죽음의 길을 가신다고 직접 말씀하시지 않으므로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리라’는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고 서로 수근 거린다.

처음에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겠고,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는 말도 알아듣지 못하는데, ‘또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고 하시니 답답한 제자들은 ‘무슨 말씀이뇨?’ 하며 서로 서로에게 묻는다.

18절 “또 말하되 조금 있으면 이러한 말씀이 무슨 말씀이뇨?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알지 못하노라 하거늘”

제자들은 아무리 생각해도 스승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여 서로에게 ‘도대체 저 말씀이 무슨 말씀이뇨?’ 하며 궁금해 하는 모습이다.

19절 “예수께서 그 묻고자 함을 아시고 가라사대 내 말이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므로 서로 문의하느냐?”

궁금해 하는 제자들을 지켜보던 예수께서 제자들의 시선을 집중하게 하시고 말씀하신다.

20절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겠으나 세상은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예수께서는 중요한 말씀을 하실 때마다 ‘진실로 진실로’ 라고 강조해 오신 예수께서 여기에서도 강조하신다.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리라’ 제자들이 스승의 십자가상에서의 죽음을 보면 곡하고 애통하리라는 말씀이다.

‘세상은 기뻐하리라’ 왜 세상이 기뻐하는가? 여기서 세상은 마귀가 지배하는 죄악의 세상이다. 예수그리스도를 시기하던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면 자신들이 이긴 것으로 착각하기 때문이다.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내가 죽음의 길을 가므로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어 온다는 말씀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영원히 죽는 것이 아니라 죽음의 권세를 이기고, 또한 인류에게 하늘의 생명을 나누어 주신 후 승리의 부활을 하시기 때문이다.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을 잠시 생각해 보자!

단 한 번의 죽음으로

(1) 세상 죄(십자가상의 강도)를 잡아 죽이는 일이 이루어졌다. 곧 강도의 죽음은 나 자신의 죽음이다.

(2) 세상 죄를 잡아 죽이고, 그 자리에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접목하는 일을 농부가 하셨다.

(3) 인류는 죄로 죽음을 당하였지만, 인류는 새 하늘의 생명인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얻었다.

(4)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지만, 죽음의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시므로 즉, 승리의 부활을 하셨기 때문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죽음도 새 생명을 얻는 죽음이다. 이것이 죽음을 이긴 그리스도의 생명으로서의 부활 신앙이다.

21절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이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을 인하여 그 고통을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느니라.”

예수께서는 곧 다가올 십자가상에서의 죽음을 ‘해산의 고통’으로 비유하신다.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이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을 인하여 다시는 고통을 기억지 아니하느니라’ 여인들의 출산의 고통은 크지만, 아이를 낳은 뒤에는 출산의 기쁨으로 고통을 생각지 않는다고 하신다. 이는 새로운 하늘백성 탄생을 예고하는 말씀이기도 하다.

22절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너희가 지금은 근심하나’ 제자들이 죽음의 길로 가시는 스승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나, 예수가 죽음의 길을 가지만 곧 너희를 다시 볼 것이라는 말씀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너희-곧, 우리를 다시 볼 때는 예수께서는 부활의 생명이요,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는 혈통을 받았다는 말이기도 하다.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의 그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왜?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기 때문이다.

23절 “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 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그 날에는’ 그날은 어떤 날인가? 예수 그리스도와 들포도나무인 우리 강도가 십자가상에서 참포도나무인 예수님의 진액을 받는 날을 말한다. 즉, 하나님이 농부로서 접붙임의 일을 하시는 날이다.

‘아무 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그날 이후에는 아무것도 예수께 묻지 않고 오직 순종으로 받는 믿음뿐이다. 아멘!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그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얻는 날이 지나면 너희는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가 되니 그 뒤로는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면 예수의 이름으로 주신다 참말로 놀라운 은혜의 말씀이다.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라 하신다.

24절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그날에는! 곧 그날 십자가상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얻는 날이면 한 혈통이 되는 것이니, 구하라! 그리하면 받을 것이다. 그때는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고 하신다. 정말 놀라운 하나님의 인류! 구원의 은혜이다.

이 놀라운 은혜를 받고도 신앙으로 살지 않으면 아버지 하나님께서 얼마나 실망하시겠는가?

==========================================================

요한복음 공부 발표 2015년 10월 10일 (비매품)

E-mail : imjoongki@hanmail.net http://cafe.daum.net/1000wooo

電話 010-6346-3736 요한복음공부 발표인 임 중 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