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공부

예수 그리스도의 공개 전도를 총 정리(整理)(상)

임중기 2014. 5. 6. 19:00

 

< 요한복음 공부 제57과>

 

 

예수 그리스도의 공개 전도를 총 정리(整理)(상)

 

 

본문 말씀 12:36∼43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떠나가서 숨으시니라. 이렇게 많은 표적을 저희 앞에서 행하셨으나 저를 믿지 아니하니 이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가로되 '주여 우리에게 들은 바를 누가 믿었으며, 주의 팔이 뉘게 나타났나이까?' 하였더라. 저희가 능히 믿지 못한 것은 이 까닭이니 곧, 이사야가 다시 일렀으되 '저희 눈을 멀게 하시고 저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저희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하였음이더라. 이사야가 이렇게 말한 것은 주의 영광을 보고 주를 가리켜 말한 것이라. 그러나 관원 중에도 저를 믿는 자가 많되 바리새인들을 인하여 드러나게 말하지 못하니 이는 출회를 당할까 두려워함이라. 저희는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였더라.”

 

 

본문 분해

37절 많은 표적을 행하신 예수를 믿지 않음

38절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이 이루어지다

39,40절 예언의 성취

41절 이사야의 예언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영광

42절 예수를 믿는 관원이 많았으나 드러내지 않음

43절 믿는다는 사람들이 예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함

 

 

예수 그리스도의 공개전도 정리(上)

 사도 요한은 12장 37절부터 마지막절인 50절까지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공개전도를 정리하여 말하고 있다.

 

 사도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기록한 중요부분을 보면 아래와 같다.

첫째,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1:18) 하고, “만물이 그(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그리스도)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1:3)고 하였다. 이는 곧 예수 그리스도를 조물주(造物主) 하나님으로 나타내고 있는 대목이다.

 

 둘째, 조물주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인류에게 나누어 줄 생명의 떡으로서 오셨다고 6장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살아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인하여 살리라.”

 

 사도 요한은 위의 말씀 외에도 많은 말씀을 기록하였지만, 하늘 복음의 큰 줄거리는 ‘이 떡을 어떻게 인류가 먹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사도 요한은 스승 예수의 십자가상에서의 피 흘림에 초점을 맞추기 위하여 이사야의 예언을 들어 말하고 있다.

 

 

인류 구원의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 흘림으로만 열린다

 사도 요한은 12장 12,3절에서 유대인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맞으러 나가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고 외쳤으며, 심지어 19절에서는 바리새인들이 저희끼리 말하기를 “볼찌어다. 너희 하는 일이 쓸데없다. 보라, 온 세상이 저를 좇는도다”라고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스라엘 왕으로까지 영접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오늘 공부에서 “이렇게 많은 표적을 저희 앞에서 행하셨으나 저를 믿지 아니하니 ⃟이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가로되 ‘주여, 우리에게 들은 바를 누가 믿었으며 주의 팔이 뉘게 나타났나이까?’ 하였더라. ⃟저희가 능히 믿지 못한 것은 이 까닭이니 곧 이사야가 다시 일렀으되 ⃟‘저희 눈을 멀게 하시고 저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저희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37절∼40절)고 하였다.

 

 사도 요한은 앞에서는 유대인들이 예수를 이스라엘의 왕으로까지 영접하였다고 기록하고서 뒤에 와서는 ‘저희 눈을 멀게 하시고 저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왜 이런 이율배반(二律背反)적인 기록을 하고 있을까? 분별하여 공부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성서를 공부한 사람들이 이율배반적인 이 부분을 바르게 파고든 사람은 누구도 없었다고 감히 선언한다.

 

  사도 요한은 왜 앞과 뒤를 백팔십도로 전환시켜 이율배반적인 기록을 하였을까? 그 까닭은 이미 이사야가 선언하고 있다.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사1:1,2)고 하면서 하나님을 떠난 사람은 짐승인 소보다도 못하다고 기록하고 있다.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었도다. 그 중에 망대를 세웠고, 그 안에 술틀을 팠었도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포도를 맺혔도다”(사5:2)고 하는 이사야의 탄식이 나온다. 왜 이사야가 탄식하고 있는가? 인류가 스스로는 회복할 수 없는 들포도나무로 전락하였기 때문이다.

 

 

 사도 요한은 이것을 본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아무리 천국 복음을 전하고,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그 복음의 말씀을 들어 깨닫는다고 해도 인류의 구원의 길은 열리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만약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깨달음만으로 인류 구원의 길이 열린다면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죽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해서 오직 포도농장에서 들포도나무를 다 잘라내고 그곳에 하나님이 보내신 참포도나무로의 접붙임만이 인류 구원의 길임을 말하고 있다.

 

  또한 예수님의 세례 요한에 대한 말씀에서도 인류가 얼마나 부족한 존재인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요한보다 큰 이가 없도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 보다 크다”(눅7:28)고 하셨다. 아무리 하나님의 예언자(豫言者)로 온 세례요한이지만, 십자가상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받지 못한 사람이기 때문에 십자가상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받은 사람과 비교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다시 말하여 십자가상에서 예수와 같이 죽어 낙원에 간 강도는 예수의 피가 그 몸에 있으나, 세례요한은 예언자의 신분이지만 그리스도의 혈통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래서 세례요한은 말석에 세우고, 예수 그리스도를 생명의 근원으로 영접하여 신앙으로 산 사람은 세례자 위에 서게 되는 것이다.

 

 

 사도 요한은 십자가상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좌·우의 강도가 십자가상에서 죽는 모습을 접붙임-그대로 잘 표현하여 접목에 필요한 원목인 예수 그리스도의 다리는 끊지 않고, 좌·우 강도의 다리만 끊는 십자가상의 접목의 모습을 잘 나타내고 있다.

 

 사도 요한은 십자가 사건에다 인류 구원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하려고 이사야의 예언을 도입하여 말하고 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 흘려주심으로만 인류 구원의 길을 여신다. 곧 증언자 바울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도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살게 하려 함”이다. 여기서 ‘우리도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살게’ 하는 새 생명이란 ‘그리스도의 생명’을 말한다. 우리가 십자가상에서 죽을 때는 우리의 죄된 몸이 죽어 없어지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흘린 새 생명의 피를 접목 받아 부활 신앙으로 산다는 말이다.

 

 

본문 공부

 36,37절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떠나가서 숨으시니라. ◊이렇게 많은 표적을 저희 앞에서 행하셨으나 저를 믿지 아니하니”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고 저희를 떠나가서 숨으신 이유는 아직 죽을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십자가에 매달릴 때까지는 수일간의 시간이 아직 남아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공개전도 기간에 많은 표적을 행하여 자신이 하늘로부터 온 하나님의 아들! 곧 하나님의 생명이라는 것을 전하는 말씀을 하였다. 한마디로, 세상 사람들은 들포도나무요, 자신은 참포도나무란 것을 전하기 위함이었다.

 

 

 38절 “이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가로되 ‘주여 우리에게 들은 바를 누가 믿었으며 주의 팔이 뉘게 나타났나이까?’ 하였더라.”

쇠귀에 경 읽는다는 말대로 듣기는 하여도 그 본뜻을 이해(理解)할 수 없는 말이었다. 그런데 이사야 선지자는 이 경우를 미리 본 것이다. ‘주여, 우리가 들은 바를 누가 믿었습니까?’ ‘주의 팔은 누구에게 나타났습니까?’ 하는 한탄이다. 즉, 아직 하나 될 수 있는 길이 열리지 않았다는 말씀이다.

 

 

  39,40절 “저희가 능히 믿지 못한 것은 이 까닭이니 곧, 이사야가 다시 일렀으되 ◊‘저희 눈을 멀게 하시고, 저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저희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하였음이더라.”

사도 요한은 ‘저희가 능히 믿지 못한 이유!’를 이사야의 말로 증거하고 있다.

이사야의 말씀을 고쳐 말하면 ‘십자가상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피를 흘려주시지 않으면 다른 길은 없다’는 말씀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깨달아 구원의 길을 인류에게 허락하지 않았다는 말씀이다. 왜? 인류 구원의 길은 십자가상에서의 접붙임뿐이기 때문이다.

 

 

 41절 “이사야가 이렇게 말한 것은 주의 영광을 보고 주를 가리켜 말한 것이라.”

이사야는 이상(理想)을 보았다. 인간이 생각 할 수 없는 최고의 이상이다. 그 이상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말하고 있다.

-인류에게 생명을 주는 이상!-

그 이상은 인류를 십자가상에서의 피 흘림으로 한순간에 개조(改造)되는 이상이다.

베드로는 십자가상에서 흘린 피가 인류에게 흘러듦을 보았다(벧1장).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인류에게 접붙임 됨을 보았다(롬11장).

그래서 단테는 이 부분을 축약시켜 ‘신곡’ 천국 편에서 사도 요한과 베드로, 바울의 만남을 보여주고 있다.

 

 

 42절 “그러나 관원 중에도 저를 믿는 자가 많되 바리새인들을 인하여 드러나게 말하지 못하니 이는 출회를 당할까 두려위함이라.”

사도 요한은 말한다. ‘관원 중에도 예수를 믿는 자가 많다. 그러나 바리새인이 알면 출회를 당할까 염려되어서 드러나게 말하지 못하고 있다.’ 이 말은 곧 인간들이 믿는 일에 한계(限界) 보여주는 말이다.

 

 

 43절 “저희는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였더라.”

사도 요한이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의 허상(虛像)을 보여주며 결론을 맺는다.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도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였더라.’ 예수의 생명이 없으면 하늘 백성의 자격이 주어지지 않기에 믿는다고 하더라도 절대로 하늘 백성이 될 수 없음을 말하고 있다.

 

 

 

책 소개 "우리가 먹어야 할 생명의 떡"

 

위의 책은 2009년에 발간되었다.

 

 ‘한국 무교회’ 일부 기득권자들은 이 책의 내용이 이단에 속한 글이라고 질책을 하였지만, 인터넷 판매 회사인 “인터파크 도서”에서는 이 책을 “종교철학(宗敎哲學) 종교학(宗敎學)”으로 분류하여 판매하였다 무교회에서는 부정하는 책을 판매회사에서는 “종교철학, 종교학”으로 분류 명예를 회복해 놓았다.

 

 인터넷에 들어가 “우리가 먹어야 할 생명의 떡”을 클릭하면 판매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저자(著者) 임중기는 적어도 선인(先人)들이 말하였던 성서 말씀을 앵무새처럼 답습(踏襲)하여 말하는 말이 아니었다 새로운 진리(眞理) 발견(發見)의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