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공부

바람으로 계신 창조주 하나님 (3)

임중기 2014. 4. 7. 20:12

<>요한복음 공부 5년 기념 특집)

 

바람으로 계시는 創造主 하나님(3)

 

어머니의 젖과 하나님의 영(靈)

 어린 아이가 어머니의 젖을 빨 때에 ‘젖만 빠는 것으로 생각하면 큰 잘못’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젖만 빠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의 사랑을 빨고 그 사랑의 영양분으로 인성이 성형되어 사람이 된다는 말이다. 마찬가지로, 사람은 누구나 대기(大氣, 공기)라고 하는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영체(靈體)에 ‘코’라는 빨대를 꽂아 놓고 일을 하는 낮이나, 잠을 자는 밤이나, 음식을 먹을 때나, 쉴 때나, 심지어는 남을 사랑하거나 미워할 때에도 언제나 하나님의 영이라는 은혜의 사랑으로 호흡하며 살고 있다.

 

 유아들과 어린이뿐만 아니라 젊은이 늙은이 등 누구나 사람이라면 태아에서부터 죽을 때까지 하나님의 영이요 은혜인 바람!! 공기로 호흡하면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일하며 배우고 사랑하며 살도록 창조하셨다.

 하나님의 영은 ‘히브리어’로 ‘루앗하’ (Ruach)인데 본디 바람이라고 한다. 성서에서도 바람, 호흡, 생기 등으로 쓰고 있으니 하나님의 영은 곧 바람인 것이다. 그런데 이 영-바람은 만유 어디에나 함께 있다. "임마누엘 할렐루야 아멘!"

 하나님의 영이 바람, 호흡, 생기라고 하였으니 그렇다면 대기(大氣) 곧 기체(氣體)는 하나님의 영체(靈體)로 하늘의 모든 물질-즉, 천체(天體)의 표면(항성, 행성, 위성, 혜성, 성단 성간 등)을 둘러싸고 있는 기체(氣體)는 하나님의 영체!!라고 말 할 수 있다. 좁게는 지구상 어디에나 곧, 사람의 몸속과 식물의 줄기 속, 땅 속과 물속의 고기들 뱃속까지도 빈 공간 없이 가득이 차있는 공기! 곧 바람을 하나님의 영체로 보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 하나님의 영체에 사람들은 ‘코’라는 빨대를 연결하여 숨을 쉬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선조들은 윗 어르신들께 인사를 올릴 때에 ‘기체(氣體) 평안하십니까?’라고 인사를 하였다. 이때의 기체는 기력과 체력 즉, ‘몸과 마음의 평안’을 묻는 인사다. 이처럼 육친(肉親)의 어른들께 ‘기체 평안’으로 인사를 하였는데, 하물며 천체(天體)를 하나로 둘러싸고 있는 기체(氣體)를 하나님의 영체로 보는 것은 당연하다.

 

하나님의 영체(靈體)로 보는 것의 타당성

 어머니의 젖 속에는 아기가 성장하는 데에 필요한 많은 성분이 들어있다. 예를 들면 모유 속에는 각종 병균으로부터의 감염을 막아주는 면역성분뿐만 아니라 성장에 필요한 각종 호르몬과 두뇌발달에도 필요한 필수 영양소 등 아이의 성장에 필요한 물질들이 들어 있다.”(졸저 ‘작은 목소리’에서)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체라는 바람! 즉, 공기 속에도 과학적으로 밝혀진 많은 성분이 있지만, 밝혀지지 않은 성분들도 있을 것이다. 간략히 정의한다면 공기 안에는 동식물은 말 할 것도 없고, 특히 사람이 호흡하며 살아가는데 좋은 많은 성분이 있다고 본 것이다.

사람이나 동물은 빨대인 코를 통해 숨을 쉬고 있을 때에 살아 있다고 보지만, 사람을 살아있게 하는 또 다른 성분이 있을 수 있다는 말이다. 그 성분은 바로 하나님의 영인 바람이라는 말이다.

 

 바람은 사람의 몸 안의 미세한 세포 속까지도 다닌다. 많은 사람들은 혈관을 통해 피가 온 몸을 돌고 있다고 보지만, 대부분 그 안에 바람(산소)이 함께 있음을 생각지 않고 살아간다. 그러나 불이 바람과 함께 있을 때에 타오르는 것처럼 혈관을 흐르는 피도 바람과 함께 온 몸을 돌고 돌아 미세한 세포가 살아 있게 함으로 사람이 생명을 유지하게 된다.

 

 혈관 속 피와 함께 흐르는 바람! 곧 산소가 포함되어 있지 않으면 피는 돌 수 없고, 미세한 세포는 살아가지 못한다. 피가 돌면서 바람을 나르므로 세포 하나하나까지 그 바람으로 숨을 쉬며 살아 있다. 더욱이 사람의 머리털 속 세포 하나하나까지 숨을 쉬게 한다. 어디 사람 몸 속 뿐이겠는가? 많은 동식물이 같은 원리로 살아 숨을 호흡하며 살아간다. 가축과 들짐승, 날짐승, 물고기들과 수많은 객체의 식물들까지도 바람이 있음으로 살아간다.

 

마리아의 처녀 잉태와 관련하여

 그리스도교 신앙인들이 마리아의 처녀 잉태를 말할 때에 인간의 논리로는 이해가 되지 않으므로 이것을 ‘논리의 초월’이라는 말로 대신 해 왔다. 이리하여 그리스도교에서는 초월논리라는 이론 아닌 이론이 통하게 되었다.

 이렇게 된 것은 십자가의 인류 구원의 논리를 대속(代贖)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건을 “접붙임의 만남”으로 보면 마리아의 처녀 잉태는 진리의 논리로 서는 것이다.

 

 십자가의 사건을 접목으로 볼 때 접목은 ‘만남’이다. 이는 곧 예수 그리스도와 좌·우의 강도가 십자가상에서 함께 죽음으로 이 사건 자체가 만남이다. 인류의 구원이 만남으로 된다는 뜻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을 참포도나무라고 하셨다. 그렇다면 왜 예수가 자신을 참포도나무라고 하셨는가? 그것은 자연을 비유로 하신 말씀이다. 자연! 참포도나무와 들포도나무를 비유로 하여 자신의 십자가 사건을 설명하시기 위함이었다. 증언자 바울은 예수를 참감나무로 예를 들고 있다. 그리고 접붙임의 능력이 농부인 하나님께 있다고 한다(로마서11장).

 

 접붙임을 받으면 우리 그리스도인은 참포도나무의 가지가 된다. 십자가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가지를 들포도나무인 인류-곧, 나와 여러분에게 주려고 피를 흘려 죽으시고, 예수 좌·우의 두 강도는 인류의 대표로서 밑동이 절단 되어 죽어 없는 그곳에 접붙임을 받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가지! 곧 피가 흘러들어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벧전1:2)은 접붙임이 성립되어지는 것이다. 이것을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만남이다.

 

 인류의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 곧, 예수의 생명이 우리 안에 만남으로 들어와 계심이다. 다시 말하여 처음 인류 창조가 만남이요, 나중의 인류 구원도 만남이다.

 

 마리아의 처녀 잉태 또한 만남이다. 마리아와 하나님의 성령이 강림하여 “만남”이 이루어졌다. 그런데 이 마리아와 성령의 만남이 논리에 맞지 않다 하여 억지춘향이란 말처럼 논리초월이란 말이 나왔다. 그러나 씨앗이 땅에 떨어져 ‘흙과 씨앗의 만남’으로 새싹이 돋아남을 생각하면 이상할 것이 없다. 씨앗의 ‘흙과의 만남’은 보편적인 현상이라 논리로 믿고, 마리아의 몸에 성령 강림에 의한 잉태는 보편적인 시각이 아니기 때문에 이상하게 보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일도 자주 있게 되면 보편적인 일로 생각할 것이다.

 

 사람을 처음 창조할 때에 하나님이 흙으로 당신의 형상대로 모형을 만드시고, 그 모형에 하나님의 생기를 불어 넣어서 사람이 되었는데, 이는 곧 ‘흙과 생기의 만남’이다. 마찬가지로 마리아의 잉태도 '성령과의 만남'이다.

 

 '만남'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1) ‘흙과 생기의 만남’으로 아담 창조

(1) ‘몸과 성령의 만남’으로 마리아의 예수 그리스도 잉태

(1) 씨앗과 땅이 만남‘으로 새싹이 돋아남

(1) 예수의 피와 인류의 만남’ 이 만남으로 인류가 구원받음.

위에서 말한 대로 사람이 만들어진 원재료는 흙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은 후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어서 사람이란 생령이 되었다’(창2:7)고 하였으니 마리아의 몸도 분명 흙으로 되어있다. 이 흙에 성령이 강림하신 것이나, 흙에 생기를 불어 넣으신 것이나, 씨앗이 흙에 떨어져 새싹이 돋아나는 것이 같은 논리이다.

 

 이토록 성경 말씀은 하나님이 은혜를 보여주심으로 다 논리로 풀릴 수 있다. 그런데 논리의 초월이라는 논리 아닌 논리를 사용하는 것은 성서를 공부하면서도 하나님께 의뢰하지 않고, 몰입하지도 않는다는 증거이다.

 

사람의 존엄성

 세상은 하나님이 지으신 창조물이다. 그래서 모든 창조물을 한마디로 우주만물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 많은 창조물 중에서도 사람은 최고의 걸작이다. 故 노평구 선생께서는 ‘사람의 정신세계가 우주보다도 넓다’고 하셨다.

 

 세상에는 사람이 무수히 많다. 우리 앞에 살다 간 사람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것이며, 현존하는 사람만으로도 70억 명이 넘는다고 한다. 그렇지만 나와 똑같은 사람은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즉, 얼굴이나 신장 체중 등이 같은 신체에 똑같은 사고(思考)를 가진 사람은 없을 것이란 말이다.

 

 설령 있다고 하드라도 신앙까지 같은 사람은 더욱 그럴 것이다. 하나님의 생명을 받는 신앙은 접붙임의 신앙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나는 노평구 선생 말씀대로 우주보다 넓은 두뇌를 갖고 있다고 자부해본다. 이렇게 본다면 나 같은 사람은 인류역사 전에도 후에도 없을 것이다. 증언자 바울은 ‘모태에서보다 더 전에 하나님이 자신을 택하셨다’고 말하고 있다. 이토록 우주보다 넓은 두뇌를 가진 사람이라는 걸작을 하나님은 창조하신 것이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나 같은 죄인을 새롭게 하시려고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그 존귀하신 하나님이 나 같은 죄인을 살리시려고 죽으셨으니 사람이란 존재가 얼마나 존엄한가? 이것이 하나님이 인류를 사랑하시는 증거다. 예수님도 ‘너희 목숨이 천하보다도 귀하다’고 하셨다. 왜 천하보다 더 귀할까? 그것은 天地를 창조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죄로 물들어 하늘나라에 갈 수 없는 우리를 죄인에서 하늘 백성으로 다시 살게 하시려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기 때문이다.

 

흙과 사람과 성서말씀은 유기체(有機體)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창세기2:7) 하나님의 생기와 흙의 ‘만남’으로 아담이 생령이 된다. 또한 흙으로 빚어진 사람에게 하나님의 啓示가 임하시어 성서가 기록 된다. 이 또한 사람과 하나님 계시와의 ‘만남’이다. 즉 흙과 하나님의 생기가 만나 사람이 되고, 그 사람과 하나님의 계시가 만나 사람이 성서를 기록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흙과 사람과 성서말씀’은 유기체(有機體)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사람의 근육이나 장기는 미세한 세포들로 이루어져 있고, 이것들이 신체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사람의 주재료인 흙도 미세한 미생물 덩어리라는 것이요, 더더욱 놀라운 것은 흙과 사람이 하나님이 불어넣어주신 생기로 오늘까지 아니, 앞으로도 영원히 숨을 호흡하며 살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즉 하나님이 흙에게 생기를 불어넣어 주심으로 사람이 되게 하셨고, 그 생기로 호흡하며 살아가도록 하셨으므로 ‘흙과 사람과 성서말씀’은 유기체이다.

생기를 불어넣으신 원리로 만물이 생육하고 번성하고 그 생기로 숨을 호흡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이 흙과 사람의 세포! 흙의 미생물까지도 하나님이 불어넣어 주신 생기로 호흡하며 살아간다. 이 얼마나 전지전능의 창조주이신가? 깊은 마음으로부터 찬미와 영광을 세세토록 드릴 뿐이다.

 

갈등을 풀어 세계 火藥庫에서, 세계 평화를 기여하는 韓半島로!

 우리나라는 단일 민족이면서도 많은 갈등이 있다. 세계의 어느 민족도 이렇게 갈등이 많은 나라가 없다. 남과 북의 갈등이 있고, 이념의 갈등과 지역 간의 갈등이 있으며, 사회 양극화는 심화되면서 빈부간의 갈등 또한 깊어지고 있다. 왜 이렇게 갈등이 갈수록 깊어지는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갈등하는 이유는 무엇이며, 책임을 따진다면 진보주의자들에게 있는가? 보수주의자들에게 있는가? 여기에 대한 답은 단정적으로 말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누구의 잘못인가? 그것은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찾지 못하기 때문이다.

올해(2014년) 초, KBS 1TV에서는 우리나라의 갈등을 주제로 논하는 ‘일요진단’ 프로가 방송되었다. 이날 방송을 보면서 나의 머리에 스치는 생각이 있었는데, 그것이 갈등의 치유책이 아닐까 생각되어 이 글을 쓴다.

 

 세계에서 내부(內部) 갈등이 심한 나라로는 1위가 터키, 2위는 한국, 그 다음은 일본이라고 하였다.

갈등이 가장 심한 터키의 서남쪽은 지중해에 둘러싸여 있고, 서북쪽은 불가리아와 흑해가 막고 있으며, 북동쪽은 조지아(그루지아), 동쪽은 이란, 동남쪽은 시리아와 이라크가 있다. 터키는 친 서방정책과 실리 외교를 추구하고는 있지만, 이해관계가 얽힌 주변국(불가리아, 그리스, 이라크)들과의 국경문제로 첨예한 갈등을 겪는 것으로 보인다.

 

 갈등 2위의 나라인 우리 한반도 역시 삼면(三面)이 바다요, 남과 북의 갈등으로 대륙이 있는 북쪽으로는 마음대로 갈 수가 없다. 갈등 3위의 나라 일본(日本) 또한 사면이 바다여서 마음대로 대륙 진출을 못 하는 곳이다. 이러한 점으로 보아 세계적 갈등국인 세 나라는 대륙으로의 진출이 막혀 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생각해 보자. 약 1,500년 전 삼국시대에는 한반도 남쪽 끝에서 북쪽으로 두만강을 건너 선양과 베이징은 말할 것도 없고, 하얼빈과 몽골을 거처 터키는 물론이요 그리스까지 왕래하는 통로가 있었다. 해서 오늘과 같은 극심한 갈등은 없었다. 갈등이 있다면 힘의 갈등-곧, 주도권 갈등이었다.

 

 고구려의 광개토왕은 영토를 넓혀 요동(遼東)과 만주까지 차지한 왕이다. 그래서 터키와 그리스까지 가는 길을 확보함으로 동서간의 교통이 활발하였다. 또한 신라 불교가 왕성하여 찬란한 불교문화의 꽃을 피운 것도 알고 보면 역시 대륙의 횡단의 길이 열려 많은 승려들이 당에 유학을 하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이웃 일본을 여러 면에서 능가할 수는 없는 것일까? 그러려면 역시 부산에서 북쪽 하얼빈까지 철의 실크로드를 연결하는 일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우물 속 개구리처럼 갇혀만 있었기에 갈등이 증폭만 되었는데, 열차를 타고 실크로드를 타라 대륙을 관통하여 독일이나 불란서까지 다니면서 여러 활동을 벌이게 된다면 지역간의 갈등이나 이념간의 갈등은 스르르 사라지게 될 것이다.

 

 혹자는 비행기만 타면 세계 어느 나라든 갈 수 있는데 무슨 소리냐며 반론을 제기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비행기는 소수의 사람이 이용하는 제한적인 교통수단이다. 그러므로 대중이 땅 위를 달리는 철의 실크로드가 필요하다. 달리면서 여러 사람들의 사는 모습이며 산과 들과 강물을 바라보면서 길고 긴 철의 실크로드를 달린다면 우물 안 개구리의 시각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겠는가. 극동아시아에서 서유럽까지 저 넒은 대륙을 달리게 된다면 지역의 갈등이나 이념의 갈등에 가치를 부여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것을 보고, 세계 여러나라 사람과 만나게 되면, 우리는 우물 안 개구리 신세를 벗어나게 될 것이다.

 

 여론의 탈출구가 없고, 이념의 논리에 탈출구가 없고, 산업 발전의 전진기지가 없기 때문에 국영기업체 하나를 놓고도 지역간에 서로 유치하려고 치열한 갈등을 빚는다. 그러나 철의 실크로드가 놓여져서 중앙아시아 등지로 진출하여 미개발지들을 개발하면서 대륙을 달리면 기업체 하나를 서로 데려가겠다고 지역끼리 갈등할 이유가 없어진다. 철의 실크로드로 달리게 되면 남과 북의 갈등 또한 스르르 없어지게 될 것이다.

 

 철의 실크로드를 따라 경제 개발을 하면, 경제적으로 일본을 능가하는 부국이 될수 있고, 그때 일본은 감히 독도가 자신들의 땅이라고 말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약 160년 전에 개화(開化)할 수 있는 절호의 시기에 개화를 못 하였고, 이웃 일본은 약 130년 전에 개화를 하여 오늘날 우리보다 앞서가고 있다.

 

 우리는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못하고 있다. 이러면 안 된다. 160년 전에 개화의 시기를 놓쳤던 일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되면 일본이 재무장하여 또 다시 우리를 넘볼 수도 있다. 일본 수상 아베의 말이 ‘한국인은 어리석은 사람들’이라고 하였는데, 그 말의 속뜻은 ‘재침략을 준비하고 있으니 까불지 말라’ ‘한국 너희가 걸핏하면 사과와 반성을 하라고 하는데 우리(일본)는 그럴 마음이 전혀 없다’는 말일지도 모른다.

 

 이제 우리는 일본의 사과를 기대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부산에서 하얼빈까지 철의 실크로드를 건설하고, 한반도를 세계 강대국으로 키워 미국과 중국, 일본, 러시아 등으로부터 「영세중립국」으로 공인을 받아야 한다. 세계 강대국들이 “불가침 조약”으로 공인을 하고 서로 불가침이 지켜질 때에 세계 평화는 영원해진다. 주변 4강의 불가침 약속을 받으려면 한반도는 먼저 비무장지역! 즉 세계의 갈등 완충지역! 평화지대가 되어야 한다. 철의 실크로드가 놓아지면 남과 북의 갈등은 자연스레 해소된다. 반대로, 철의 실크로드를 놓지 못하여 남과 북의 갈등이 계속되면 세계의 평화는 먼 일이다.

 

 부산에서 북한을 거쳐 하얼빈까지 철의 실크로드가 놓이면 한반도는 세계의 화약고에서 세계 평화에 기여하는 나라가 될 것이다. 이것이 유일신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이 본 한반도의 비전이다.

2014년 2월 5일치 매일경제신문의 기사가 있어 여기에 옮긴다.

 

 2만km 한국 ~ 실크로드 자유관광특구 만든다

“대한민국 정부가 주축이 된 장장 2만km짜리 초대형 ‘실크로드 관광특구 프로젝트’ 가 추진된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31개국은 향후 자유무역협정과 비슷한 개념의 자유관광협정 을 맺어 비자 없이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는 관광 거점으로 개발한다는 구상이다.

UNWTO가 추진하는 실크로드 프로젝트는 아시아와 유럽 대륙을 잇는 관광특구 프로젝트다. 아시아 관광의 핵심으로 급부상한 한국을 시작으로 중국 본토를 포함해 몽골, 인도, 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를 거쳐 터키 아제르바이젠, 불가리아, 루마니아, 이탈리아, 스페인까지 모두 31개국이 거점이 된다.”

 

천우 예배모임 안내

 

  때 : 매월 두 번째 일요일 오전 10시 30분

: 스피치와 변화 4층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동 6가 1-15번지 (영등포 시장 로터리)

 

 1부 예배모임 사회 : 임효성

말씀 하시는 분 : 이기영 목사님, 한장희, 임중기.

2부 신앙 간담 사회 : 정인순

 

 연락처 : 정인순 (011-768-8865)  임중기 (010-6346-3736)

매월 (2번째 일요일) 오전 10시30분시 예배모임이 있습니다.

 10시 30분 오시는 대로 돌아가며 성경을 몇 귀절씩 읽고 11시에 시작합니다. 모임이 끝나면 점심을 같이 하고 해산합니다.

 

지하철 1호선 이용시 : 영등포역에서 하차 후 (롯데백화점 방향)으로 나와 신세계 백화점과 경방필 백화점을 지나 영등포시장 로터리 사거리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면 ‘스피치와 변화’ 간판이 보임

지하철 5호선 이용시 : 영등포시장역에서 하차, 4번 출구로 나와 200미터 직진 후 우측 모닝글로리 문구점을 끼고 우회전 하면 ‘스피치와 변화’ 간판이 보임

주차장은 ‘영남 주차장’이용

 

중국어를 배웁시다.

 2012년 4월 8일 모임부터 예배 후에 중국어 공부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천우 모임에 나오시는 이정혜 선생의 (중국어 교사) 도움으로 천우모임 식구들에게 중국어를 가르쳐 주시겠다 하시여 천우모임 식구들이 중국어를 배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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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공부 발표 2014년 4월 10일 (비매품)

E-mail : imjoongki@hanmail.net http://cafe.daum.net/1000wooo

電話 010-6346-3736 요한복음공부 발표인 임 중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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