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공부2>
세례 요한은 누구인가?
본문 말씀(요한복음 1장 6∼9절)
“하나님께로서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났으니 이름은 요한이라. 저가 증거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거하고 모든 사람으로 자기를 인하여 믿게 하려 함이라.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거하러 온 자(者)라. 참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인류 최고의 사람-세례 요한
세례요한에 대한 기록 분해
이사야서 40장 3절 이하에 ‘광야에서 외치는 자’로 예언.
누가복음 1장 36절과 57∼80절의 세례 요한에 대한 출생에 관한 기록.
마가복음 1장 2∼8절의 ‘약대 털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며, 야인으로 광야에서 외치는 사람으로 표명하는 사람’
마태복음 3장 1∼11절의 ‘회개(悔改)하라, 천국(天國)이 가까웠느니라’는 외침.
사도행전 1장 5절의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聖靈)으로 세례를 받으리라”는 비교 기사.
위에서 살핀 대로 세례자 요한에 대하여는 여러 곳에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토록 성서 4복음서에 다 기록이 있고, 구약 시대의 최고의 예언서인 이사야서에 기록이 있음을 보면-역시 세례요한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같이 ‘여자가 낳은 자 중에서 최고의 사람’으로 생각됩니다.
세례자 요한은 일반 서민의 신분이 아닙니다. 그는 당시 최상층 계급인 대제사장 「사가랴」의 아들로, 태어날 때부터 명예와 부를 다 가지고 태어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명예와 부를 분토와 같이 버리고 광야에 외치는 자로 섰던 것입니다.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우주만물을 운행하시는 그 분, 예수 그리스도! 인류를 창조하셨으면서도 인류가 죄에 빠짐으로 다시 새롭게 하시려고 오신 우주 만물의 주인인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만왕의 왕이신 그분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는데, 인류에게 소개하는 사람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 소개할 사람은 여자가 낳은 사람 중에서 최고의 사람이어야 할 것입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지방을 방문하면 그 지방의 최고 책임자가 나와 영접하고 소개하며 안내합니다. 하물며 우주만물 인류의 주인이요, 만왕의 왕이 오시는데 격에 맞는 인물이 영접하고 소개하며 안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명예와 부를 양손에 거머쥐고 대 제사장 아들로 태어난 사람-세례요한! 그는 스스로를 ‘예언자 이사야가 말한 광야에서 외치는 자’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또한 ‘나는 쇠해야 하며, 그(예수 그리스도)는 흥(興)하여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세례요한에 대한 기록을 남긴 사람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예언자 이사야와 4복음서를 기록한 마태, 마가, 누가, 요한. 그리고 바울 사도가 있습니다.
이 사람들의 면면을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이 여섯 사람 중 이사야는 예언자 중 최고의 예언자입니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 대하여 예언이 적중한 예언자입니다.
마태와 마가는 공관복음서를 기록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입니다. 누가는 예수의 직제자는 아니지만, 누가복음을 기록하고 세례자 요한의 탄생의 모습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을 기록한 요한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그는 스승의 사랑을 독차지 할 정도로 귀염을 받았고, 복음서 중에서도 최고인 요한 복음서를 기록한 사람입니다.
또한, 사도행전의 주역이요, 서신서 대부분을 쓴 바울이 세례자 요한에 대하여 ‘그는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그 뒤에 오신 분-곧,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聖靈)으로 세례를 주는 분’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성서학자들은 요한을 일컬어 예수의 12제자 중에서 최고로 인품을 갖춘 사람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와 안드레는 어부요, 서민 하층 계급의 사람들이지만, 복음서를 쓴 요한은 그 시대의 지식층 계급에 속하는 사람으로, 법원 같은 곳을 자유로이 들어 갈수 있었던 사람으로 성서는 기록하고 있습니다(요한복음 18:15 참조). 이러한 요한이 복음서 중에서도 최고의 복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세례요한은 ‘이 세상의 여자가 낳은 자 중에서 최고의 사람’입니다.
그리스도교 2000년 역사에서 “광야의 소리” 하면 누구나 세례요한을 생각합니다. 그가 외친 뒤로는 지금까지 세상 어느 누구도 광야의 소리를 뛰어넘지 못하였습니다. 왜 광야의 소리를 뛰어넘는 사람이 없었을까요? “광야의 소리”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외치는 소리였기 때문입니다. 우주 만물, 인류 창조주에 대한 커다란 소리였기에 2000년이 흐르도록 그를 뛰어넘는 소리가 없었던 것입니다.
물로 세례를 주었던 세례요한 그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나는 물로 세례를 주지만, 내 뒤에 오시는 그분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聖靈)으로 세례를 주는 이인 줄 알라”고 말입니다. 성령은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의 영의 세계의 근본입니다. 인류를 창조할 때에 흙에 불어넣은 생기, 곧 성령으로 세례를 준다는 것입니다.
본문 분해
6절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
7절 “빛! 곧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증거”
8절 “세례요한은 빛이 아님”
9절 “세상 사람에게 비취는 빛”
6절 “하나님께로서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났으니 이름은 요한이라”
세례자 요한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왔다고 했습니다. 쉽게 이야기 하면 하나님의 심부름 즉, 창조주의 심부름을 하러 왔다는 이야기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창조주가 세례요한을 보낸 것입니다. 물론, “예수 그리스도가 참 빛임을 증거하라”는 임무를 지워서 말입니다.
7절 “저가 증거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거하고 모든 사람으로 자기를 인하여 믿게 하려 함이라.”
세례자 요한은 빛-곧,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자기의 증거를 모든 사람들이 듣고, 자신의 증거로 인하여 믿게 하려는 목적으로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모든 사람은 과거와 현재, 미래의 사람을 다 포함하고 있습니다. 미구에 태어날 단 한사람까지도 소외되는 일 없이 모두 믿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잃어버린 양 한 마리”의 비유처럼 인류라면 모두가 믿게 하기 위한 증거입니다.
8절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거하러 온 자(者)라”
요한복음을 기록한 사도 요한은 세례요한을 가리켜 “그는 이 빛(예수 그리스도)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거하러 온 자(者)”라고 하였습니다. 세례요한이 정말로 위대한 사람이라서 세례자 요한을 빛으로 착각 할 수 있기 때문에 “그는 이 빛이 아니요”라고 선을 분명히 긋고, “이 빛(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증거하러 온 자”라고 한 것입니다.
9절 “참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이 말씀은 5절의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 하더라”는 말씀에 이어지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곧, 창조의 하나님이 우주만물과 인류를 창조하시고, 그 창조물을 운행하시며 늘 계셨다는 것입니다. 빛으로, 말씀으로 늘 계셨지만, 어두움이었던 세상은 그 빛에 대하여 알지 못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시기 전에도 세상에 빛으로 말씀으로 계셨지만, 어두움이었던 세상 사람들은 깨닫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창조자이며 구원자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르게 알리기 위하여 세례자 요한이 하나님의 심부름꾼으로 와서 증거를 한다는 것입니다.
창조자 하나님이 빛으로 말씀으로 계셨지만, 왜 인류는 알지 못했습니까? 그 까닭은 이분(二分)된 상태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늘나라와 인간세상은 이분된 상태입니다.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죄를 범하였기에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으니(롬3:23)” 분명 이분된 상태입니다.
지음을 받을 때는 극상품, 열매는 들포도-이렇게 이분된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영으로 계시고, 빛과 말씀으로 계신 그 분을 알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깨어있던 사람들은 빛으로, 말씀으로 영으로 계신 하나님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선견자, 또는 선각자, 예언자들입니다. 아브라함, 엘리야, 이사야 등 수 없이 많은 선각자들은 이미 일찍부터 알고 말해 왔습니다. 그런데 선견자, 또는 선각자, 예언자들에게도 하나님이 먼저 보여주심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인간이 먼저 하나님을 알아 본 것이 절대 아니었습니다.
이제 새로운 시대가 왔습니다. 말씀으로, 영으로, 빛으로 계시다가 인간의 모습으로 육신이 되어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소개하고 안내하러 온 세례자 요한의 증거를 우리는 지금 느끼고 있습니다.
역사는 새로운 시대를 이렇게 말합니다
역사에서 ‘기원’은 빼놓을 수 없는 말입니다. B.C(Before Christ)는 기원 전, A.D(Anno Dommini)는 기원 후를 나타냅니다. 여기에서 기원의 전과 후는 로마제국이 전 영역 안의 인구를 조사할 때였는데, 마침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신 때여서 그 이전의 시대를 B.C로 쓰고 있는 것입니다. 새 기원 ‘서기’란 말도 이때부터 쓰이기 시작했는데, 라틴어로 ‘A.D’는 그리스도 기원이라는 뜻도 있다고 합니다. 이때를 성서에서는 ‘은혜의 시대’라고 하기도 하고, ‘자유의 시대’로 말하기도 합니다.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는 말은 말씀으로, 빛으로, 영으로 계시던 하나님이 육신의 옷을 입고 오신 때를 일컫는 말입니다. 구약의 율법 시대에서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은혜의 시대, 자유의 시대, 구원의 시대가 온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교는 역사가 증거하고, 역사와 함께하는 길․진리․생명이 되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창조의 역사 하나님!
생육 번성의 생명력 하나님!
마지막 새, 생명을 다시 인류에게 주신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
요한복음 서두처럼 “태초에 말씀이 계셨고, 그 말씀으로 우주만물과 인류를 창조하신 역사가 있습니다. 아담이 범죄 하여 인류가 죄인이 되었는데, 우리 인류를 처음 아담의 모습으로 회복하시려고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습니다.
오신 그분! 창조자요, 구원자인 예수 그리스도를 세례요한이 세상에 소개하고, 그분에 길을 안내하고, 앞에 서서 ‘이 분이 그리스도 예수!’라고 이야기 하려는 세례요한을 사도 요한은 기록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세례자 요한을 소개한 성서 기자는 여섯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로서 복음서를 기록한 마태, 마가, 누가, 요한과 구약 시대의 예언자 이사야, 사도행전을 기록한 바울이 그들입니다. 이들 모두가 세례자 요한을 소개하고, 나중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음을 보는 것입니다.
신약의 복음서들은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서신서 또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본체이신 분이 아들의 모습으로 오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계시록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심판과 구원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는 곧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의 왕’으로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이는 기사들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이야기를 합니다. 저 자신도 예수 그리스도를 이야기하려고 요한복음을 공부하는 것입니다.
자연(自然)과 사람의 인체(人體)도 하나님의 구원의 진리를 가르쳐 줍니다.
모든 자연은 하나님이 진리를 가르치기 위한 시청각 자료로 창조하셨습니다. 예를 들면 꽃은 벌과의 만남으로 씨앗을 맺게 됩니다. 그 씨앗이 땅에 떨어져 땅과 만나면 새 싹이 돋습니다. 이 만남은 생육 번성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새싹이 크게 자라는 사이에 병이 들면, ‘접붙임의 만남’으로 회복하게 됩니다. 나무가 불에 타거나, 바람에 맞아 가지가 끊어지거나 못쓰게 되면, 그 가지의 밑동에 불에 타지 않은 가지를 접붙임 하면 됩니다.
사람이 병들었을 때에도 접붙임의 만남으로 회복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외과 수술은 접붙임의 만남의 원리에서 온 의술입니다. 각막 이식수술이나 신장이식수술도 같은 원리입니다. 인체의 어느 부위에 염증이 생기면, 그 염증을 제거하고 약을 발라 치료하는 것도, 화상을 입은 얼굴에 이식수술을 하는 것도 모두가 접목의 이치를 적용한 의술입니다.
인류가 만들어 내는 언어나 공작품도 모두 만남의 원리로 만들어지지만, 잘못 되거나 못쓰게 되면, 이것들의 치료는 접붙임의 만남의 원리로 됩니다.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집에 불이 나더라도 타다 남은 것들을 뜯어내고, 수리를 하는 것도 접붙임의 원리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이 창조하신 우주만물과 인류는 살펴본 대로 만남의 원리로 생육하고 번성하며, 사람이 만든 창작품과 공작품도 다 만남의 원리로 만들어 집니다. 그러나 병든 식물이나, 사람들의 치유는 접붙임의 원리로 되어짐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접붙임의 깊은 의미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병든 신장을 잘라내는데 큰 의미가 있습니다. 이식 수술이라 하여 그저 이식수술이 아닙니다. 병든 신장을 잘라내고 그곳에 병들지 않은 신장을 접붙임을 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접붙임도 같은 것입니다. 죄인인 강도! 곧 우리는 자신의 몸을 멸하기 위하여 죽고, 예수 그리스도는 강도에게 자신의 생명을 주기 위하여 죽는 것입니다. 이것을 증언자로 나선 바울 선생은 서신서 대부분에서 이래와 같이 이야기합니다. 로마서 6: 5절부터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聯合)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復活)을 본받아 연합(聯合)한 자가 되리라”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滅)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罪)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증언자 바울은, 셀 수 없이 많은 곳에서 예수와 같이 죽었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사건도 대속이나 속죄가 아닌, 접붙임의 만남으로 역사하셨음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접붙임의 만남’의 신앙은 영과 육을 다 살리는 신앙입니다.
오늘의 결론
오늘의 말씀이 ‘세례요한은 누구인가?’였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세례요한”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증거 하러 왔다는 기록을 공부했습니다. 아울러 구약성서의 내용과 신약복음서, 서신서, 계시록도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한다는 것을 공부하였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창조하신 우주만물-곧, 자연(自然)과 사람(人體)이 하나님의 십자가의 진리! 접붙임의 만남을 설명하고 있음을 볼 수 있었습니다. 우주만물-하늘과 땅에 모든 것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진리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논담 (論談)
새로운 진리를 발견하게 되면, 그 평가가 가까운 사람에게서부터 반대의 말을 듣게 된다. 그리고 먼 곳으로부터는 발견한 진리가 참으로 ‘진리’라고 인정을 받는다.
반대로 거짓 진리를 말하면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인정을 받는다. 그러나 먼 곳으로부터는 그 것이 거짓 진리라고 말을 듣게 된다.
요즘 나는 <우리가 먹어야 할 생명의 떡>이란 새로운 말을 하게 되었는데 나와 40년 信仰의 同志로부터는 그것이 거짓이라고 공격을 받게 되고, 먼 곳 나를 한번도 보지 못했던 분으로부터는 그것이 ‘진리’ 새로운 발견이라고 감사의 전화를 받게 되었다.
2009년 6월 10일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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