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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하)

임중기 2016. 8. 6. 18:28

< 요한복음 공부 제 83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하)

 

본문 말씀 19:8∼16

“빌라도가 이 말을 듣고 더욱 두려워하여 다시 관정에 들어가서 예수께 말하되 너는 어디로서냐 하되 예수께서 대답하여 주지 아니하시는지라 빌라도가 가로되 내게 말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를 놓을 권세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세도 있는 줄 알지 못하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위에서 주지 아니하면 나를 해할 권세가 없었으리니 그러므로 나를 네게 넘겨 준 자의 죄는 더 크니라 하시니 이러하므로 빌라도가 예수를 놓으려고 힘썼으나 유대인들이 소리질러 가로되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니이다! 무릇 자기를 왕이라 하는 자는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이니이다! 빌라도가 이 말을 듣고 예수를 끌고 나와서 박석(히브리 말로 가바다)이란 곳에서 재판 석에 앉았더라. 이 날은 유월절의 예비일이요 때는 제 육시라. 빌라도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보라, 너희 왕이로다. 저희가 소리지르되 없이 하소서! 없이 하소서! 저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빌라도가 가로되 내가 너희 왕을 십자가에 못 박으랴? 대제사장들이 대답하되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 하니 이에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히게 저희에게 넘겨 주니라.”

 

본문 분해

8,9절 너는 어디로서냐?

10절 내가 너를 놓을 권세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세도 있다

11절 위에서 주지 아니하면 나를 해할 권세가 없다

12절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다

13절 빌라도, 재판석에 앉다

14절 보라, 너희 왕이로다

15절 없이 하소서

16절 십자가에 못 박게 넘겨주다

 

 앞장의 “우리가 사는 세상은 들 포도나무 농장” 설명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비유를 들어 말씀을 많이 하셨다.

특히 자신에 대하여

(1) 나는 참 포도나무다

(1) 나는 생명의 떡이다.

(1)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등 많은 비유가 있다.

제자나 사람들에게 가르침의 말씀을 하실 때에도 여러 가지 비유를 들었다.

(1) 가라지 비유

(1) 씨 뿌림의 비유

(1) 달란트 비유 등이다.

 이러한 비유는 장차 겪게 될 자신의 십자가 사건을 설명하기 위함으로, 특히 십자가의 의미(意味)가 잘 나타나 있다.

 다시 말하여 “나는 참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고 할 때에 너희가 나의 생명을 생명의 떡으로 받아먹어야 너희는 ‘나의 가지’ 곧 ‘참포도나무의 가지’가 될 수 있다는 말씀이다.

 증언자 바울 선생은 “참감나무와 돌감나무의 접붙임의 능력이 하나님께 있다”고 하였다(롬11:23).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나는 참포도나무, 너희는 나의 가지, 아버지는 농부”라는 말씀으로 증언하고 있다. 예수께서는 ‘나는 참포도나무, 너희는 가지’라고 하셨는데, 바울은 ‘참감나무와 돌감나무’를 예로 들고 있다. 접붙임의 대상이 예수님과 바울이 포도나무와 감나무로 나뉘어 있지만, 들포도나무나 돌감나무 모두가 접목의 단계를 거친 후에서야 참포도나무나 참감나무가 되기 때문에 예수님의 십자가사건으로 접목을 설명하는 데에는 같다고 하겠다.

 “또한 가지 얼마가 꺾여졌는데, 돌감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 되었은 즉” 이는 곧 참감나무인 예수 그리스도의 가지가 채찍에 의해 흘린 피로 돌감나무인 우리에게 접붙임이 되었다는 말씀이다.

 또 수제자인 베드로는 증언자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 한다고 했는데, ‘그리스도의 피로 접붙임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한다’는 말이다.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벧전 1:2, 1:23)

살펴본 대로 증언들 모도가 십자가의 사건은 대속의 사건이 아니라 접붙임의 사건임을 말해주고 있다.

 

본문 공부

 8,9절 “빌라도가 이 말을 듣고 더욱 두려워하여 ◇다시 관정에 들어가서 예수께 말하되 너는 어디로서냐? 하되 예수께서 대답하여 주지 아니하시는지라”

앞과 공부에서 ‘예수에게서 죄를 찾지 못했다’는 빌라도의 말에 유대인들이 대답한다. ‘저(예수)가 사람이면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참람한 말을 하였으므로 죽이는 것이 당연하다. 이 말을 듣고 빌라도가 ‘혹시 예수가 정말 하나님의 아들일까?’ 하는 두려운 마음이 생겨 다시 관정에 들어가서 예수께 되묻는다. ‘도대체 너는 어디에서 왔느냐?’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를 알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대답해주지 않는다.

 

 10절 “빌라도가 가로되 내게 말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를 놓을 권세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세도 있는 줄 알지 못하느냐?”

빌라도가 자신이 묻는 말에 예수께서 대답을 하지 않으므로 이번에는 자신의 권세를 내새워 압박한다. ‘내가 너를 놓을 권세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세도 있는 줄 알지 못하느냐?’ 라고. 사람의 목숨을 좌우할 수 있는 권세야말로 인간세상에서는 큰 권세 아닌가. 일반인들이라면 그 앞에서 자연 머리를 굽히게 된다.

 

 11절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다면 나를 해할 권세가 없었으리니 그러므로 나를 네게 넘겨 준 자의 죄는 더 크니라 하시니”

자신의 권세로 압박하는 빌라도에게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위에서’ 즉 아버지께서 너에게 주지 아니하셨다면 나를 해할 권세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를 네게 넘겨 준 자의 죄는 더 크다’고 하신다.

 

 12절 “이러하므로 빌라도가 예수를 놓으려고 힘썼으나 유대인들이 소리질러 가로되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니이다! 무릇 자기를 왕이라 하는 자는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이니이다!”

빌라도는 예수를 놓으려고 힘썼으나 유대인들이 큰소리로 외친다. ‘이 사람을 놓으면 당신은 가이사의 충신이 아닙니다! 무릇 자기를 왕이라 하는 자는 가이사에 반역하는 것입니다!’

당시 유태지역은 로마의 지배 아래 있었으므로 유대인들의 왕은 로마의 가이사인데 예수가 자신을 왕이라고 하였으니 가이사에 대한 반역이라는 유대인들의 말이다. 바꾸어 말하면 반역자를 놓아주면 총독 당신도 반역자가 된다고 유대인들이 협박을 하고 있는 것이다.

 

 13절 “빌라도가 이 말을 듣고 예수를 끌고 나와서 박석(히브리 말로 가바다)이란 곳에서 재판석에 앉았더라.”

유대인들의 협박성 외침을 들은 빌라도가 재판석에 앉았다. 어떻게든 판결을 해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14절 “이 날은 유월절의 예비일이요 때는 제 육시라. 빌라도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보라, 너희 왕이로다.”

빌라도가 유대인들에게 말한다. ‘보라, 너희 왕이로다.’ 이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

(1) ‘너희의 왕’이라는 유대인을 비하하는 의미

(1) ‘너희 왕을 내가 십자가의 못 박으랴? 하고 묻는 의미

 

 15절 “저희가 소리 지르되 없이 하소서! 없이 하소서! 저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빌라도가 가로되 내가 너희 왕을 십자가에 못 박으랴? 대제사장들이 대답하되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 하니”

우둔(愚鈍)한 유대인들은 발라도가 자신들을 비하하고, 심지어 ‘내가 너희의 왕을 십자가에 못 박으랴?’ 하면서 유대민족을 비하하는데도 그저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한다. 요즘의 우리 대한민국 위정자들이 유엔에서 북한을 징벌하라고 외치는 모습과 비슷하다.

 

 16절 “이에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히게 저희에게 넘겨 주니라.”

결국 빌라도는 유대인들의 소원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판결을 한다.

여기서 깊이 생각해야 할 일은 유대인들의 소원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지만, 위에서 허락하신 죽음이다. 인류! 들포도나무에게 그리스도의 피를 흘려주어 그 생명으로 거듭난 새사람은 창조이다.

예수님의 수제자인 베드로는 증언자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라고 쓰고 있다. 이 말은 곧, 그리스도의 피로 접붙임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한다는 말이다.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이상 살펴본 대로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대속의 사건이 아니라 접붙임의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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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공부 발표 2016년 8월 10일 (비매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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