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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떡 예수 그리스도(3)

임중기 2011. 9. 10. 21:36

< 요한복음 공부 제28과>

생명의 떡 예수 그리스도(3)

본문 말씀 6:41∼51

“자기가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라 하시므로 유대인들이 예수께 대하여 수군거려 가로되 이는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니냐? 그 부모를 우리가 아는데 제가 지금 어찌하여 하늘로서 내려왔다 하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는 서로 수군거리지 말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선지자의 글에 저희가 다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으리라 기록되었은즉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마다 내게로 오느니라. 이는 아버지를 본 자가 있다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에게서 온 자만 아버지를 보았느니라.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라.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이는 하늘로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하시니라.”

본문 분해

41,2절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니냐

43,4절 내게 오면 마지막 날에 살리라

45절 하나님의 가르치심으로 내게 온다

46절 아버지를 볼 수 있는 자

47절 믿는 자는 영생을 갖는다

48절 생명의 떡

49,50절 육의 양식과 영의 양식

51절 내가 줄 떡은 나의 살

인류를 개조할 제2의 창조

창세기 2장 7절의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이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흙으로 빚은 사람의 형상에 생기를 불어 넣어서 생명이 있는 생령(生靈)이 되었다고 했다. 여기서 생령은 두 가지 역할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생령(生靈). 生은 生命이고, 靈은 하나님의 몸에서 나온 생명의 기운-바람이다. 즉, 사람은 생명과 령으로 창조된 것이다. 이는 마치 불쏘시기에 불씨를 넣고 입으로 바람을 불어 넣어 불을 피우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것을 정리하면

生은 생명이요,

靈은 바람이다.

아담! 곧 사람뿐 아니라 만물이 다 하나님이 불어넣으신 생기와 만남으로 창조되고, 그 불어넣어 주시는 생령으로 호흡하며 살고 있다. 이것이 제1의 창조이다.

이때의 아담은 극상품 포도나무였다. 그런데 사탄의 유혹으로 아담이 죄를 범하여 에덴동산에 살지 못하고 세상이란 곳으로 추방과 도망을 한다. 이리하여 아담과 하나님 사이에는 서로 오가는 길이 없어져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가 단절 되었다.

추방과 도망의 의미를 살펴보자.

추방 : 하나님 편에서의 추방이다. 하나님은 죄인인 아담을 죽이지 않고 추방하셨다. 아담이 비록 죄를 지었지만, 당신의 창조물이시기에 목숨만은 살리시겠다는 자애로움에서였다.

도망 : 아담 편에서의 도망이다. 죄를 지은 아담은 하나님을 볼 수 없게 되어 (거룩하신 하나님을 보면 죽게 되므로) 하나님의 눈을 피하기 위한 도망이다.

위의 모습을 선지자 이사야는 “에덴동산에서 살지 못하는 인류가 들포도나무로 절락하였다고 한탄한다.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었도다. 그 중에 망대를 세웠고 그 안에 술틀을 팠었도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포도를 맺혔도다.”(사5:2)

농부인 하나님이 들포도나무인 인류를 참포도나무로 접붙임 하시려고, 당신의 품속에 있던 예수를 처녀 마리아의 몸을 통해 세상의 들포도나무 농장 한가운데 심으셨다. 접붙임을 하려고 가지를 얻기 위해서였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 위에 매달려 죽을 때에 왜 들포도나무인 강도가 좌편과 우편에 자리를 잡고 같이 죽었는가? 예수의 피로 접붙임 하시려는 하나님의 깊은 뜻이었다. 세상 인간 즉, 들포도나무인 강도에게 접붙임 하시려는 하나님의 높은 뜻이었다. 다시 말하면 제2의 창조를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와 인류인 강도와 내가(我)같이 십자가상에서 함께 죽은 것이다.

하나님은 첫 번째 창조 때에 흙에 생기를 불어넣어 아담을 창조하셨다.

두 번째 창조는 당신의 몸속에 계시던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 위에서 죽게 하고, 거기서 나온 피로 죄인들과 접목시킴으로 새 하늘 백성으로 개조시키셨다.

새로운 인간으로 개조되어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다시 사는 것을 「거듭남」 혹은 「부활」이라고 말한다. 곧 아담의 후손인 좌우의 강도는 죽어 없고, 예수의 피로 접붙임을 받아 예수의 생명으로 다시 사는 것을 「부활신앙」이라 한다.

증언자 바울 선생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 위에서 같이 죽고, 같이 부활(復活)하는 것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다.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者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復活을 본받아 연합한 者가 되리라.”(롬 6:5)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접붙임으로 오신 참포도나무가) 오직 내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가지를 접붙임 하기 위하여)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2:20) -괄호 안은 필자 삽입-

이리하여 하나님 품속에 계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십자가에서 흘린 피로 접목되어 우리 인류와 여러분과 나의 안에 오시여 하나 되게 하는 일을 농부인 하나님이 하셨다. 예수께서는 “내가 하늘에서 온 것은 너희와 하나 되기 위함이다”고 말씀하신다. 무한한 은혜의 말씀이다. 따라서 여러분과 나는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 될 때에 하늘나라에 가게 되는 것이다.

본문 말씀 공부

41,2절 “자기가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라 하시므로 유대인들이 예수께 대하여 수군거려 ◇가로되 이는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니냐? 그 부모를 우리가 아는데 제가 지금 어찌하여 하늘로서 내려왔다 하느냐.

“내가 하늘에서 온 떡”(35절)이라는 예수의 말을 들은 유대인들은 “저 사람이 목수 요셉의 아들이라는 것을 우리가 다 아는데 왜 자기가 하늘로서 왔다고 하느냐?”며 수군대고 있다.

성경 말씀에 의하면 예수는 요셉의 아들이 아니다 그런데도 유대인들은 예수를 요셉의 아들로 알고 있다. 하긴, 마리아의 성령에 의한 잉태를 알지 못하는 당시 사람들로서는 할 수 있는 말도 될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깊이 생각 할 것이 있다. 예수가 요셉의 아들이면 우리 그리스도교(敎)는 성립될 수가 없다.

예수님이 아브라함의 혈통인 다윗의 자손 요셉의 아들이면 예수도 우리와 같은 죄인이 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대속의 信仰觀으로도 그리스도敎가 성립될 수가 없다. 죄인이 누구를 대속 할 수 있는가.

“접붙임의 만남”의 信仰觀으로도 마찬가지다. 다 같은 들포도나무끼리 접목을 하더라도 결과는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직 예수님은 성령에 의한 마리아의 처녀 잉태로만 그리스도敎가 성립할 수가 있다.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1:18)는 말씀대로 하나님의 품속에 계신 독생하신 하나님이 스스로 나타내셨기에 그리스도敎가 성립할 수가 있는 것이다.

43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서로 수군거리지 말라”

요셉의 아들이라고 수군거리는 사람들에게 “너희는 나를 잘 알지 못하면서 뭐라고 수군거리느냐? 수군거리지 말라고 나무라신다. 나는 너희가 알고 있는 요셉의 아들이 아니라는 뜻이 들어있는 말씀이다.

44절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나를 (이 땅에)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너희가 아무리 내게 오고 싶어도 하나님이 너희를 나에게 이끌지 않으시면-즉,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내게 올 수 없고, 뜻이 있어야 내게 올 것이다. 너희가 나를 요셉의 아들로 여기고 있지만 나를 믿으려면 아버지께서 을 하셔야 된다는 말씀이다.

하나님의 일은 어떤 일인가? 접붙임으로 인류를 구원받게 하시는 일이다. 십자가상에서의 하나님의 역사가 없다면 어느 누구도 나에게 올 수 없고,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도 없다는 말씀이다. 하나님의 일은 접붙임의 일이다.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하나님의 역사로 내게 오면 마지막 날에 살린다는 말씀이다. 그렇다면 마지막 날이란 언제를 말하는가?

(1) 사람이 죽어 세상을 떠나는 날

(1) 하나님의 심판의 날

또 하나는 ‘신앙으로 거듭남을 체험 한 날’도 들 수 있겠지만, 체험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인간은 연약한 육신에 불과하여 언제라도 유혹에 빠질 수 있기 때문에 마지막 날의 범주에는 들지 않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45절 “선지자의 글에 저희가 다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으리라 기록되었은즉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마다 내게로 오느니라.”

앞절의 보충설명이다. 사람이면 누구나 하나님의 가르침을 받을 것이라고 선지자가 예언하고 있다. 하나님의 가르침을 받으면 누구나 예수께 온다는 말씀이다. 체험의 그리스도교(敎)를 일컬음이다.

46절 “이는 아버지를 본 자가 있다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에게서 온 자만 아버지를 보았느니라.”

아버지께 배운다고 해서 누구나 아버지를 볼 수 있다는 말이 아니다. 오직 하나님께로서 온 자만 아버지를 보게 된다고 했으니 예수 자신만이 아버지를 보았고 볼 수 있다는 말씀이다.

47,8절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라.”

믿는 자’ 곧 아버지 하나님의 가르침으로 나 예수를 믿는 자는 영생을 갖게 된다. 나 예수는 생명의 떡이다.

이 말씀은 ‘장차 하나님이 십자가 위에서 행하실 접붙임으로 믿는 자들은 영생을 갖게 되니 예수는 곧 생명의 참포도나무’라는 말씀이다.

49,50절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이는 하늘로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너희 조상들이 광야에서 먹었던 만나는 비록 하나님이 내려주신 것이지만, 굶주림에서 육의 생명을 살리는 떡이기에 이 떡을 먹은 너희 조상들은 다 죽었다.

그러나 내가 주는 떡은 생명의 떡이어서 이를 먹기만 하면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말씀이다.

51절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하시니라.”

하늘에서 내려온 영원한 생명의 떡은 바로 나 예수의 살이다. 내가 주는 떡은 광야에서 너희 조상들이 먹었던 만나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떡으로, 누구나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는 말씀이다.

이 말씀은 장차 십자가상에서 자신의 살을 찢어 접붙임할 것임을 예고하신 말씀이다. 이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감당 할 것인가? 오직 감사로 감격으로 받을 뿐이다.

하나님께 은혜를 얻었느니라

“그에게 들어가 가로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는도다.’ 하니 처녀가 그 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고? 생각하매 천사가 일러 가로되 ‘마리아여, 무서워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얻었느니라.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웟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의 왕노릇 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누가1:28∼32)

위의 말씀과 같이 성령님의 강림으로 예수가 잉태되어 이 땅에 오셨다.

마리아의 처녀잉태를 믿어야 그리스도교(敎)가 성립(成立)한다

일반적으로 생각할 때에 처녀잉태란 논리적으로 이해되지 않는다. 그래서 그리스도교인들은 이것을 ‘신의 영역에서는 논리를 초월한다’라는 말로 대신해 왔다. 그래서 이제까지 그리스도교에서는 초월이라는 이론이 불문율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이것은 예수의 인류 구원의 논리를 대속으로 보았기 때문에 초월이라는 논리 아닌 논리가 성립되어 누구도 이의를 제기해서는 안 되는 불문율로 자리 잡은 것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건의 눈을 대속에서 돌려 ‘접붙임의 만남’으로 보면 마리아의 처녀잉태는 진리의 논리로 서게 된다.

접목은 ‘만남’이다. 십자가의 사건을 접목으로 보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좌우의 강도들도 ‘접붙임의 만남’이 된다. 즉, 인류의 구원이 만남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처음 인류 창조는 만남이다.

제2의 창조인 인류의 구원도 만남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창2:7) 이 말씀은 곧 흙과 하나님의 생기와의 만남이다.

마리아의 처녀잉태 또한 만남이다. 하나님의 성령이 강림하여 마리아와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그런데 이 ‘마리아와 성령의 만남’이 논리에 맞지 않다 해서 초월이라는 논리 아닌 논리가 나왔다. 그러나 씨앗이 땅에 떨어져 ‘흙과 씨앗의 만남’으로 새싹이 돋아남을 생각하면 이상할 것이 없다. 씨앗이 땅에 떨어져 ‘흙과 만남’은 보편적인 일이라서 논리로 믿고 마리아의 몸에 성령님의 강림에 의한 잉태는 보편적인 일이 아니기 때문에 이상할 뿐이지만, 이러한 일들이 자주 있게 되면 보편적으로 보일 것이다.

또 우리가 생각 할 것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사람 마리아는 주재료가 흙이다. 그러면 처음 창조 때에 흙에 하나님이 생기를 불어넣어 사람을 창조하신 것이나, 흙으로 된 마리아에게 성령님이 임한 예수 잉태는 같은 일이다.

하나님이 처음 사람을 창조할 때에 흙과 생기의 ‘만남’이 이루어졌듯 마리아의 몸에 성령이 강림한 것도, 씨앗이 흙과 만나 싹이 돋는 것도 ‘만남’이다. 이것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흙과 생기의 만남’으로 아담 창조

(1) ‘마리아의 몸과 성령의 만남’으로 예수 그리스도 잉태

(1) ‘씨앗과 땅의 만남‘으로 새싹이 돋아남

(1)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죄인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에 의한 접목’

이 모두가 한 가지 만남의 논리로 설명이 가능한 것이다.

-이상 요한복음 공부 27과에서-

 

 고 최병주 선생 추모 글 모음

최벙주 선생님!

사모님이 하늘나라에 가 계시니 그렇게 빨리 가고 싶었습니까?

그래서 얼마 안 남은 생애를 살듯 그리스도를 더 알기 위하여, 성경공부를 위하여 여러 책방을 전전하셨는지요. 또한 평택에서 영등포 예배모임까지 먼 길을 마다 않고 참석하셨는지요!

 

우리는 당신의 얼굴을 다시 보지 못함을 애석해 합니다. 말씀을 전할 때도 시 한편으로 시작하는 당신의 여유로운 모습을 이제는 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 아~ 마음이 아픔니다.

그렇지 않아도 몇 명밖에 모이지 않는 우리 작은 모임은 이제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걱정이 됩니다. 그리고 청아한 당신의 찬송소리도 들을 수 없음을 생각할 때 섭섭한 마음 그지없습니다.

 

최병주 선생님!

이제 육신을 벗어나서 영혼은 아버지의 나라, 사모님이 계신 곳으로 가 계시겠지요. 선생님은 누구나 격는 고달픈 인생길에서 선한 싸움을 싸우고 끝까지 믿음의 길을 가셨습니다.

 

이제는 이 땅의 자녀걱정, 세상사의 걱정일랑 접어두시고 사모님과 손잡고 주 그리스도와 동행하면서 주의 궁전에서 참 행복을 누리시기를 기도합니다,

먼저 가십시오. 저희들도 치열한 싸움을 더 싸우고 나중에 가서 만날 것을 기대하겠습니다. 잘 가세요. 그럼, 안녕히! 

천우모임 한 장희 올림 (편집자)

고 최병주 선생을 추모하면서

★♣★최병주 선생님은 7월 28일 <因病醫治無效>하여 우리 곁을 영영 떠나 하나님의 품속으로 歸着했습니다.

제가 최병주 선생을 안지는 僅僅이 半年 남짓한 몇 변 밖에 안되지만 남겨 준 印象 기억에 생생합니다.

성서 전도 하실때, 찬송하실때 <淸楚而響亮>한 목소리 어쩌면 그렇게도 音하나 철자하나 틀리지 않고 ......아침 일찍 일어나서와 잠들기 전 매일 매일 꼭꼭 성경을 공부 하셨으며 그속에 답안 있다고 하셨답니다. 진짜 <難得的人材>인것 같습니다.!!!

천우회의 여러 선생님! 최병주 선생께서 이렇게 우리 곁을 떠나시니 우리는 어떻게 될 것이냐고 걱정하셨지요?

사람의 生命은 有限합니다 그러나 나라와 인민을 위하는데는 無限합니다.최 병주 선생께서는 有限한 生命을 無限한 나라와 人民을 爲하는 사업에 平生을 바친 훌륭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마땅히 비통을 힘으로 바꾸어 최병주 선생님을 본보기로 각자가 자기 맡은 분야에서 나라와 인민을 위하여 맡은바 사업을 훌륭하게 철처하게 완수해야 하지 않겠는가고 생각하며 이것이 상책이라고 확신합니다. 존경하는 최병주 선생님! 모든 걱정 접으시고 명복을 머리 숙여 빕니다. 

천우모임    Li ping   드림

(중국 교포 이정혜 선생님) 편집자

본향에 가신 최병주 선생의 명복을 기원

 2011년 7월 28일 최병주 선생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본향에 가셨다.

약 7년 전부터 천우 모임에 참석하셔 성서 말씀을 해주신 선생님

 최병주 선생의 말씀은 늘 어느 유명한 詩를 낭독하시듯 말씀 내용이 초롱초롱 하신 선생님

 우리들의 거울이 되어 선생을 보면 거울을 보는 것 같이 무엇인가 가르침을 주시던 선생님

 하나님은 왜 이토록 빨리 최병주 선생을 당신 곁에 두셨는가? 생각하니 선생은 과실로 이야기하면 다 익어 선생을 이 험난한 세상에 만량 두실 수 없어 당신의 품에 두시려고 본향으로 인도하신 것을 생각하면 큰 위로가 됨을 깊이 느끼며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최병주 선생님 주 하나님 품안에 안겨서 늘 평안하소서

천우모임 임중기 올림

천우 모임이 시간과 요일이 변경 되었습니다.

 때 : 매월 두 번째 일요일 오전 10시 30분

: 스피치와 변화 4층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동 6가 1-15번지 (영등포 시장 로터리)

1부 예배모임 사회 : 임효성

말씀 하시는 분 : 한장희, 임중기.

2부 신앙 간담 사회 : 정인순

연락처 : 정인순 (011-768-8865)  임중기 (010-6346-3736)

매월 (2번째 일요일) 오전 10시30분시 예배모임이 있습니다.

 10시 30분 오시는 대로 돌아가며 성경을 몇 귀 절씩 읽고 11시에 시작합니다. 모임이 끝나면 점심을 같이 하고 해산합니다.

 

지하철 : 1호선 이용시 영등포역에서 하차한 후 롯데백화점 방향으로 나와 신세계 백화점과 경방필 백화점을 지나 영등포시장 로터리 사거리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면 ‘스피치와 변화’ 간판이 보임

지하철 5호선 이용시 : 영등포시장역에서 하차한 후 4번 출구로 나와 200미터 직진 후 우측에 모닝글로리 문구점을 끼고 우회전 하면 ‘스피치와 변화’ 간판이 보임

주차장은 ‘영남 주차장’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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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공부 발표 2011년 9월 10 (비매품)

E-mail : imjoongki@hanmail.net http://cafe.daum.net/1000wooo

電話 010-6346-3736 요한복음공부 발표인 임 중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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