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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속한 예수와 땅에 속한 나다나엘의 만남

임중기 2010. 3. 1. 20:22

<요한복음 공부8>

하늘에 속한 예수와  땅에 속한 나다나엘의 만남


본문 말씀 1장 43-51절

이튿날 예수께서 갈릴리로 나가려 하시다가 빌립을 만나 이르시되 ‘나를 좇으라’ 하시니 빌립은 안드레와 한 동네 벳새다 사람이라.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記錄)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나다나엘이 가로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善)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가로되 ‘와 보라’ 하니라.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自己)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가라사대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奸詐)한 것이 없도다.’ 나다나엘이 가로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對答)하여 가라사대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노라.’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當身)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王)이로소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또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使者)들이 인자(人子) 위에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본문 분해

43절 나를 좇으라

 44-45절 선지자들이 이야기한 그이를 만났다

46-48절 하늘에 속한 예수와 땅에 속한 나다나엘의 만남

 49절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

 50-51절 너를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더욱 높은 일도 보리라


만남!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례요한의 직접증거(直接證據)를 받고, 공생애(公生涯)로 나아가는 길목에서의 나다나엘과의 만남은 뜻 깊은 순간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나다나엘의 이 말은 땅에 속한 사람에게서 나온 예수에 대한 첫 평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만남을 ‘하늘에 속한 예수와 땅에 속한 나다나엘의 만남’이라고 하였습니다.

 

‘만남’ ‘창조’입니다

 하나님의 생기와 흙의 만남으로 아담이 지음을 받습니다. 하와도 만남으로 지음을 받습니다. 하나님과 아담의 갈빗대가 만나 이브가 되었으니까요.

 모든 동․식물의 생육 번성은 만남에서 이루어집니다. 인류 구원도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곧, ‘접붙임의 만남’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받게 됩니다.

 그렇다면 ‘만남’이란 말은 어떤 뜻을 담고 있습니까? 우리말 사전에는 ‘만남’은 ‘만나는 일’이라고 참으로 단순하게 되어 있습니다만, 일본어(日本語) 사전에는 여러 가지로 해설이 되어 있습니다. 그 가운데에서 중요한 의미(意味)가 있는 두 가지를 들어 생각해보기로 하겠습니다.

 일본어에서 ‘만남’은 であい(데아이)로,

 하나는 ‘강(江)의 합류점(合流點)’

 다른 하나는 ‘채색(彩色)의 배합(配合)’으로, 수준이 높고 무한한 상상력(想像力)을 발휘(發揮)하게 합니다. 사실, 채색의 배합이나 한강과 임진강이 한 곳에서 만나듯 두 강이 만나는 지점을 생각하면 ‘만남’이란 말에서 무한한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이 만남의 상상력이 문학(文學)이요, 철학(哲學)으로써 무한한 의미가 담겨있다고 하겠습니다.

 예수와 나다나엘의 만남을 살펴보면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또는 “그대의 마음속에는 간사(奸詐)가 없다”는 말처럼 하늘에 속한 예수와 땅에 속한 나다나엘의 만남은 우리에게 무한한 신앙심(信仰心)을 발휘(發揮)하게 합니다.


본문 공부

 43절 “이튿날 예수께서 갈릴리로 나가려 하시다가 빌립을 만나 이르시되 ‘나를 좇으라’ 하시니”

이튿날이 되었습니다. 여기서의 이튿날은 세례자 요한의 제자 안드레가 자신의 형제 시몬을 예수께 데리고 나온 다음날을 가리키는 있습니다.


44,45절 “빌립은 안드레와 한 동네 벳새다 사람이라.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우리는 여기서 ‘메시야’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는 과정을 생동감 있게 보고 있습니다. 앞의 공부에서도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으며, 예수께서 “나를 좇으라”는 승낙을 받고 곧 바로 자기 형제 시몬을 찾아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고 하며 예수께 데리고 나온 장면을 보았습니다.

 오늘 공부도 예수께서 갈릴리로 나가려 하시다가 빌립을 만나는 장면을 보게 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좇으라’ 하시니” 여기에서도 빌립은 예수의 선택을 받았습니다. 빌립은 안드레와 한 동네인 벳새다 사람인데, 빌립은 새로이 ‘나다나엘’을 찾아가서 예수를 증거합니다.

“모세가 율법에 기록(記錄)하였고, 여러 선지자(先知者)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위의 복음 전파 과정을 보면, ‘안드레는 자기 형제인 시몬에게 먼저 전파하고, 빌립은 동리(洞里)사람인 나다나엘에게 전파하는 과정을 보고 있습니다. 다시 이야기 하면, 복음을 들은 사람이 자기와 가까운 사람에게 전파하는 과정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증언자 바울은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사도행전 16:31)고 하였습니다. 한 가정에서 주 예수를 믿는 사람이 있다면, 결국 그 가정은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나아가서는 주 예수를 믿는 민족은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정신을 가다듬고 유일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참으로 믿는다면 진실로 바른 가정을 이루고, 그 나라는 의를 이룰 것입니다.

 또 여기서 우리가 간과(看過)해서는 아니 될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빌립이 외친 “모세가 율법에 기록(記錄)하였고, 여러 선지자(先知者)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고 한 말입니다. 빌립은 예수를 만나기 오래 전부터 메시야 도래를 끝없이 앙망하였음을 보는 것입니다.


 46절 “나다나엘이 가로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善)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가로되 ‘와 보라’ 하니라”

 빌립의 말에 나다나엘은 회의적으로 묻습니다. ‘유대 땅 베들레헴이라면 그럴 수 있겠지만(눅2:4∼6), 나사렛 같은 곳에서 어찌 선한 메시야가 나온단 말이냐?’고 하는 퉁박성 물음입니다.

“빌립이 가로되 ‘와 보라’ 하니라.”

 퉁박을 받은 빌립은 그래도 간절하게 말합니다. “와 보라”고. 이 말에 나다나엘은 빌립을 따라 예수에게 나옵니다.


47절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自己)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가라사대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奸詐)한 것이 없도다.’”

 예수께서 나다나엘을 보신 순간 간파하신 말씀입니다. ‘참으로 진실(眞實)한 이스라엘 사람이요, 그 속에 간사(奸詐)한 것이 없는 순진무구한 사람’이라고 말입니다.


48-49“나다나엘이 가로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對答)하여 가라사대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前)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노라.’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當身)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王)이로소이다.’”

예수는 나다나엘의 인간됨을 한눈에 알아보셨던 것입니다. 그러자 나다나엘은 자신을 알아보는 예수를 향하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하며 외칩니다. 참된 만남이 이루어지는 순간입니다. 예수께서는 처음으로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 “이스라엘의 왕”으로 바로 알아본 사람을 만나셨으며, 나다나엘은 예수 그리스도께 참 기쁨을 준 땅의 사람입니다.


50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앞절의 나다나엘의 찬양에 예수께서는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서 보았다고 하니 나를 믿느냐?” 하시고 “앞으로는 더 큰 일을 보리라”고 장차 일어나게 될 일에 대하여 말씀을 하십니다.


51절 “또 가라사대 ‘진실(眞實)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使者)들이 인자(人子) 위에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예수께서 중요한 말씀을 하실 때마다 사용하신 “진실로 진실로”라는 반복어가 요한복음에서만 23회에 이르고 있는데, 요한복음에서 처음으로 나오는 부분이 1장 51절입니다. 이 “진실로 진실로”는 중요한 가르침마다 말씀 머리에서 하신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51절에서도 예수께서는 “하늘의 징조”가 자신을 증거 한다고 하였습니다. 즉, “내가 너희에게 ‘하늘의 징조’를 보이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예수 그리스도가 아니고서는 흉내낼 수 없는 말씀입니다. 그 징조는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使者)들이 인자(人子) 위에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창조자가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말씀이요, 이루어질 수 없는 현상입니다. 메시야가 아니라면 어떻게 ‘하늘이 열리’“하나님의 사자(使者)가” 인자 위에 오르락내리락 하겠습니까? 오직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 그 분에게만 가능한 일입니다.


요한복음 1장 정리

요한복음 1장은 크게 다음과 같이 나눌 수 있습니다.

 1-5절 “우주 만물과 인류 창조의 기록”

 6-9절 “인류의 최고의 사람인 세례요한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증거”

 9-14절 “요한복음의 저자 사도요한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 관(觀)”

 15-18절 “세례요한의 예수 그리스도 관(觀)”

 19-28절 “유대인 대리인들을 향한 세례요한의 메시야에 대한 증거”

 29-34절 “예수의 공생애 시작과 세례요한의 증거”

 35절 “예수에 대한 세례요한의 마지막 증거”

 36-42절 “예수와 베드로와의 만남”

 43-51절 “나다나엘과의 만남과 이 땅에서의 첫 찬양”


 요한복음의 첫째 장을 간추리면 유일신 하나님이 우주 만물을 창조하심을 보고, 그 창조주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 공생애로 나아가는 길목에서 두 번에 걸친 세례요한의 직접증거를 받고 베드로와 빌립을 만났으며, 나다나엘을 만나 그로부터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라고 하는 이 땅에서의 첫 찬양을 받는 것으로 귀결지을 수 있겠습니다.


 요한복음 1장 공부를 마치며 느끼는 것은 저 자신으로는 단 하나의 단어도 공부 할 수 없는 존재인데, 그 분께서 가르쳐 주심으로 1장 공부를 마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에서 열까지 은혜로 하나님께 배웠습니다. 깊은 마음으로 우리 생명의 근원(根源)이신 주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께 영원히 찬송과 영광을 돌립니다.

  

 요한복음서와 로마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건을 대속, 속죄의 신앙으로 보면 로마서가 중요한 성서로 서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건을 접붙임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받는 접목으로 보면 요한복음서가 최고의 복음서로 우뚝 서게 됩니다.

 십자가의 사건을 “접붙임의 만남”으로 본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