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집을 사다
서울에 와서 돈 잘 벌어 잘 나아갈 때는 국희종 선생을 잊고 살았다. 그러나 내가 죄의 대한 절망으로 지옥 밑창에 갔다가 온 후에 국희종 선생님을 뵙고 집회에 참석하여 내가 그리스도 예수님의 보혈로 새 생명을 받았다는 것을 체험하고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 국희종 선생님을 떠나지 않았다. 비록 몸은 따로 살아도 늘 마음은 하나의 마음으로 살게 되었다. ‘복흥면 집회 참석 후에 나는 마음이 정돈되어 다시 직장에 취직을 하였다.
서울 답십리에 있는 ‘대신편물’에 이력서를 넣었다 그리고 공장장님의 면담 약속한 날 갔는데 다음날 오라고 하였다. 좀 이상하였지만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나였다. 그런데 어느 사람이 뒤따라 와서 나보고 전에 천일 회사에 있었지요? 하면서 여기 입사 이력서를 넣었느냐는 물음이었다. 나는 그렇다고 대답을 하니 그 사람 왈 이력서를 경비실에 있으니 다시 쓰라는 것이었다.
지금 이 화사는 노동조합 가입 때문에 비상이 걸려 경력이 많은 사람은 받지 않고, 초보자를 받아 기술을 양성하여 일하고 있다고 정보를 제공해준 것이다. 그리고 家內工業에서 1년 정도 경력을 적으면 입사 할 수 있다고 이야기를 하였다. 나는 이력서를 다시 제출하였다. 그리하여 입사했다. 그런데 여기저기서 두세 사람씩 속삭이고 있었다. 전에 천일 회사에서 일했느냐는 질문도 있었다. 입사 3일째 되는 날에 ‘기사장’이 나를 보자고 사무실로 호출하였다. 나는 경력을 속였다고 그만 두라고 할 것이라 생각하고 갔었는데, 뜻밖에도 견본 개지를 주면서 견본을 짜 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천일에서 견본 기사를 했었느냐는 질문 하였다. 나는 대답하고 견본을 짜게 되었다.
보통 회사에서는 최고의 경력이 있고, 기술이 좋은 사람이 견본을 짜는 것인데 나는 3일 만에 그 일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옷의 생명인 ‘예리.’를 짜게 되었다. 어느 옷이나 ‘예리’가 생명이다. 예리가 멋있어야 그 옷이 살아 보이는 것이다. 다시 말하여 회사에서 고급 일력을 찾고 있었다고나 할 때에 내가 들어간 것이다. 그사이 회사 방침으로 초보자만 입사를 받다보니 견본을 낼 사람이 마땅치 않은 상태에 있었던 것이다. 내가 입사를 하므로 제일 좋아한 사람이 공장장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3년을 일하여 1977년에 처음으로 집을 샀다. 성남시에다 20평짜리를 산 것이다. 서울에 69년 봄에 와 4년 직장 생활로 첫 개업을 하고, 다시 회사에 입사 3년 만에 77년 가을에 집을 샀으니 수입이 원만 했었다. 1977년 집을 사므로 부동산에 눈을 뜨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