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시절 (사랑에 이야기)
시골 생활과 서울 생활이 백팔십도의 변화 속에서 자연이 사랑이 찾아왔다. ‘김동희’(가명)19살 나는 21살 청춘의 꽃이 활짝 핀 것이다.
천일 무역 회사에서 최고의 월급을 받았기에 많은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나 자신은 그 때에는 많은 사람들에게 주목받고 있다는 것을 꿈에서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것을 알게 된 것은 약 20여년이 흘러 어느 사람을 남대문 시장에서 만나 알게 되고 느끼게 되었다. 그 사람 왈 “옛날에 천일 무역 회사에서 계시지 않았습니까?” 하여 “예 그렇습니다.” 하고 “어떻게 나를 기억하십니까?” 하니 그 사람 왈 “임중기씨는 그때에 스타였고, 저는 병이라 나는 임중기씨를 알지만, 중기씨는 나를 알 수 없지요.” 하였다. “원래 스타는 병을 알 수 없지만 병은 스타를 알지요.” 하였다. 그 말을 듣던 후에야 그때에 그랬었구나. 하고 생각 하게 되었다.
티셔츠를 생산하는 생산부에는 남, 여 공용의 작업장이고, 모든 가공부에는 여자들이 일을 하여 자연 여자들과 접촉하는 일이 많았다. 그렸지만 쉽게 여자친구를 사귀지를 못했는데 어느 날 생산부에 한 사람이 나의 눈에 들어왔다. 그때가 21살 되던 봄이었다. 71년 봄에 그를 좋아하게 되었고, 그를 좋아 한다고 말하게 되었다. 그리고 만나달라고 여러 번 말하였다. 그런데 그 녀에게서 편지가 왔다, 계속 자신을 괴롭게 하면 회사를 그만 두겠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놀랄 수 밖에 없었다. 나 때문에 회사를 그만두면 아니 된다고 생각을 하고, 퇴사를 말리고 더 이상 괴롭히지 않겠다고 편지를 쓰고 괴롭히지 않았었다.
그 후 5개월 후에 편지가 그녀에게서 왔다 “그대는 말도 잘하고 실천도 잘한다는” 내용이었다고 그리고 친구로 사귀고 싶다고 하였다. 나는 그 편지를 받고 나의 마음이 하늘을 날라 갈 것 같은 기분이었다. 우리는 그날부터 날마다 만났다. 하루도 빠지는 날이 없을 정도로 만났다. 아름다운 시절이 시작된 것이다. 젊은 청춘의 꽃이 활짝 핀 것이다.
그 때에 젊은 연인들이 주로 많이 가던 극장은 자주 가지 않았고, 장충단 공원이고, 뚝섬유원지에서 나룻배로 한강을 건너가면 남쪽 한강변에 갈대밭이 있고, 배나무 과수원, 딸기 밭 등 그리고 조금 더 가면 봉음사 절이 나오고 절 내경을 보고 하는 데이트를 하였다. 지금은 한강에 다리가 많아 나룻 배는 상상이 되지 않지만 그 때에는 한강 철교와 천호동 쪽으로 강진교가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멀리는 청평 유원지로 많이 갔었다. 참으로 즐거운 만남의 3년이었다.
그런데 그 때에 그녀가 임신을 한 것이다. 군 문제가 있고 하여 낙태 수술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산부인과 의사 선생님이 나를 따로 불러 야단을 쳤다. 그 때에 처음으로 나의 잘못을 알게 되었고, 살인범의 가책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그 가책은 늘 나를 괴롭히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으로 인하여 내가 죄인이란 것을 뚜렷이 알게 되었다. 이것으로 인하여 계속 마음의 굴래가 되어 나를 괴롭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