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아침을 열며(15)
경쟁을 뛰어 넘어라
나는 1978년 10월 결혼을 하고, 이듬해 2월부터 장사를 하였다. 돈이 하나도 없는 상태라. 종자돈을 모으는 일이 큰일이었다. 처음에는 행상으로 시작하여 약 2개월 만에, 하나의 상품을 만들어 히트를 하였다. 상품 개발도 돈 들어가지 않은 상품을 개발하였다. 그것은 “돼지 머리와 돼지족발에 있는 털을 제거하는 면도기”로, 시중에 나와 있는 제품을 보강하여 만들었기 때문에 돈도 시간도 들어가지 않고 개발을 하였다. 우리말 중에 음지가 양지된다는 말이 있는데, 유년시절부터 음지였다면, 이제 밝고 뚜렷한 볕이 들기 시작하였다.
돈이 없어 손 수례에 상품을 실고, 마장동 축산물시장을 지나가는데, 칼로 돼지머리털을 깎고 있었다. 나는 순간 나의머리에 스쳐지나간 것이, 왜 칼로 깎지! 면도기로 밀면 될 것을 하며, 면도기에 면도날을 끼여 이것으로 밀어보라고 어느 상인에게 주었다. (나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일에 끼어들었다.) 그 사람은 한번 밀었는데, 잘 깎아졌는데, 두 번째에는 털이 면도기에 끼여 깎아지지 않았다. 그리고 ‘상인은’ 되지도 않은 것을 준다고 하며 던져버렸다.’ (두 번째 밀 때에 털이 면도기에 끼지 않게 보강하여 돼지털 깎는 면도기를 만들어졌다.)
그 후에 (비닐 비료(肥料)포대로 앞치마’로 사용하는 시대였는데) 방수 원단으로 짧은 앞치마부터 긴 앞치마까지, 축산물시장에서 맞는 앞치마를 만들어 히트를 하고, 갈비세트 선물가방을 만들어 히트하면서 장사를 잘 하였다.
정말 그 효과는 크게 다가왔다. 칼로 돼지털을 제거하면, 한사람이 하루에 약 3-50개의 돼지머리털을 제거하는데, 면도기로 돼지털을 깎으면, 약 3-400개의를 깎을 수 있었다. 대 혁신이 마장동 축산물 시장에 일어났다. 이로 인하여 시너지효과도 많았다. 즉 5-6명의 일군이 하루에 할 일을, 1명이 하면 되는 혁기적인 혁신이었다. 돼지 털을 깎는 면도기를 판매하니 자연히 면도날이 필요하여, 면도날 소비는 계속되었다.
그런데 돼지면도기 개발로 자리를 잡고 장사를 하는데, 이웃과의 같은 품목이 겹치는 장사를 하게 되어 경쟁이 되었다. 특히 면도기 개발로 장사가 잘 되니, 오해와 시기가 일어나게 되어, 많은 분들이 견제에 나섰다. 나는 그 경쟁을 뛰어넘어 가격경쟁 없는 장사를 하고자, 이웃 분들에게 많은 시간과 식사를 같이하며 경쟁하지 말자고 하였다. 그리고 내가 개발한 면도기와 모든 품목을 판매를 원하는 분들에게는 누구에게나 주었다. 세월이 가 이웃 분들도 나의 마음을 알아주게 되어, 우리는 경쟁 없는 장사를 하기 로 다짐을 하게 되었다. 그 후 40년의 세월을 가격경쟁하지 않는 이웃들로 살았다.
사회에는 리더십이 필요로 한다고 생각한다. 그 리더십에는 시간과 금전의 손해를 감수하여야 하는 리더십이다. 남과 북의 대화도 남한의 리더십이 필요로 한다. 가진 자(者)의 양보와 협력, 손해를 감수하는 리더십이다. 그리하면 남과 북은 동북아시아에서 제일 잘사는 나라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