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처에게 감사
나는 최고로 복 받은 사람으로 나 자신에게 자답을 한다. 그것은 나의 반신 처를 잘 만났다는 것이다. 21세기 인(人)으로서는 보기 드문 사람이기에 더욱 마음으로부터 존경심을 갖는 것이다.
나의 처의 나이가 53세인데 지금까지 손톱에 매뉴큐를 칠한 일이 없다고 한 것이다. 또한 귀고리를 하기 위하여 귀 구멍을 뚤 지 않았다. 그리고 핸드폰을 가지지 않은 것이다. 참으로 순수한 사람이다. 그래도 예쁘다. 이 모습을 시인 현장송 선생은 아래와 같이 글을 쓴 일이 있다.
“그의 가정은 배우려는 의지로 꽉 차있다. 임중기 선생뿐이 아니라 그 부인 김달순 여사도 아이들을 키우면서 어린 시절 가난에 쪼들려 배우고 싶었던 것이라며 피아노를 배워 두 아이들을 가르치고, 남편 하는 일을 돕기 위하여 시장바닥을 헤매고 다니면서도 보통사람들은 그 분량에 눌려 읽어볼 엄두도 못 내는 박경리의 ‘토지’(土地)도 거뜬히 읽어내는 만년 학생 가족들이다. 그의 얼굴에서는 화장기를 느낄 수 없다. 언제든지 있는 그대로의 얼굴인데 누구보다도 아름답다. 그의 아름다운 내면의 세계가 얼굴과 행동에 짙게 배어나기 때문이다. 그의 가정에 들어서면 엄숙한 분위기가 넘치는 학교 같은 느낌이 드는 것도 대학을 다니는 두 아들 때문만이 아니라 가족 모두 배우려는 의지로 꽉 차있기 때문이리라.”
시인 현장송 선생이 쓴 것 같이 그는 정말 순수하고 예쁘다, 그리고 ‘현모양처’이다. 이제 결혼 30년, 일생동안 나를 뒷바라지 해준 그 사람! 고맙고 감사의 마음을 갖게 하는 나의 처는 늘 식사를 최선을 다하여 준비 한 것이다. 저녁에 귀가해서 저녁을 먹으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을 정도로 맛있게 음식을 준비하는 것이다. 나는 늘 이야기 한다. 집에서 먹는 저녁이 최고로 맛있다고 말한다.
나는 새벽시장에 나아가므로 아침을 04시경에 밥을 먹는 것이다. 그러나 단 한번도 빠짐없이 새벽, 아침을 먹게 준비를 해주고 밥 먹는 시간에 앞에 앉아 나를 보면서 이야기꽃을 피운다. 나는 피곤 할 것이니 자라고 하면 그리하지 않고 출근을 하는 모습을 보고 집 안으로 들어간다. 또한 결혼 30년 동안에 한번도 빠짐없이 손 수근과 양발 그리고 장갑을 준비해 준다. 내가 살면서 모든 서비스를 처에게 받는 것이다. 내가 처에게 할 수 있는 서비스는 식사 시간에 생선뼈를 골라, 처의 밥 숫 칼에 놓아 주는 서비스뿐이다. 어느 날 처와 외출 할 때에 신장에서 신발을 내놓아 주는 일을 해주려고 하여 나아가 보면 벌서 신발을 다 내놓아 나는 할 일이 없게 모든 일을 처가 한 것이다. 나를 위해 일하는 처의 모습을 보면 그것들이 사랑의 발로로 되어짐을 보는 것이다. 그의 발 거음은 힘찬 걸음이다.
나의 처는 첫째 건전한 신앙심이 있고, 건전한 사고가 있다. 그리고 그 바탕위에서 모든 일들을 잘 한 것이다. 한 가지 못하는 일은 ‘속어'를 쓰지 않은 것이다. 이제까지 ’욕‘하는 모습을 보지 못하였다. 나의 처도 고등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독서를 많이 하여 요사이에는 철인과 대화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당신이 책을 많이 보드니 이제 삶의 철인이 되었다고 이야기를 한 것이다. 나의 집에는 신앙 잡지를 약 6-7가지를 구독하는데 그것을 다 처가 읽고, 잡지뿐이 아니고 년 간 독서량이 300-400면의 책을 50권은 읽을 것이다. 참으로 놀라운 독서량이다.
나의 직업이 장사라 늘 현금을 만지는데, 나의 처는 참 청빈하여 단 10원도 공금을 쓰려고 하지 않은 것이다. 쉽게 이야기하여 간식을 살 때에도 식비에서 지출을 하고 장사돈은 절대로 손대지 않은 것이다. 나는 간식은 장사하는 돈에서 사라고 신신당부를 한 것이다. 그 심정을 잘 아는 나는 가끔 같이 시장에 가면 그날 산 물건 값은 내가 내곤한 것이다. 오늘 내가 왔으니 내가 낼게 하고 내면, 나의 처도 반기며 그렇게 하라고 한 것이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그리고 외상은 꿈에서도 생각지 않은 것이다. 저녁을 먹고 꼭 설거지를 하고 잠자리에 드는 것이다. 그것은 오늘밤에 하나님이 부렴을 받을 수 있으니 늘 설거지를 한다는 것이다.
나의 처가 그렇게 청빈하게 사는 것을 내가 누구보다도 잘 아는 고로, 나는 늘 돈을 줄 때는 처가 이야기 한 것보다 많이 주려고 한 것이다. 그래야 나의 마음이 편하기 때문이다. 일년에 두 번씩 보너스 아닌 보너스를 주는데, 돈을 주면 다음 주일에는 백화점에 갑시다. 또는 남방을 사주니 넥타이를 사주니 야단이다. 처음에는 멋도 모르고 따라 갔다가 나에게 많은 돈을 써 나중에는 당신 자신을 위하여 쓰라고 따라가지 않는 것이다. 소액의 보너스도 자신을 위해 쓰지 않고 오직 나와 아이들을 위하여 쓰는 나의 처에게 나는 무엇이라고 하여야 좋을지 그 말을 찾을 뿐이다.
남편에게 그리고 아이들에게 인정받은 나의 처!!! 그는 이웃 사람들에게도 정말 인정을 받는다. 나의 처를 아는 사람들은 나에게 부인을 잘 만났습니다. 한 것이다. 나는 그 말이 좋다. 사람이 살면서, 또는 교육을 하는 선생님이 제자들에게 인정받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더욱 어려운 일이 자식들에게 인정받기가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나의 아이들은 자신들의 어머니를 참으로 인정한 것이다. 나는 두 아이들에게 장성하여 결혼 때가 되었기에 너의 어머니 같은 사람이면 좋겠다고 이야기하며 그러한 사람을 신부 감으로 선택을 하라는 이야기를 하였다. 아이들 ‘왈’ 어머니 같은 사람은 없다고 한마디로 이야기 한 것이다.
남편에게 인정받고, 자식인 아이들에게 인정받고, 이웃에게 인정받은 ‘김 달순’님!! 나는 그를 만난 것이 최고의 복으로 생각하며 하나님께서 그를 나에게 인도해주신, 결혼이었다고 생각하며 마음으로부터 감사를 하나님께! 돌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