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공부9>
마리아, 예수께 기적 보이기를 청하다
(2장 1∼12절)
본문 말씀
“사흘 되던 날에 갈릴리 가나에 혼인(婚姻)이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예수와 그 제자(弟子)들도 혼인에 청함을 받았더니 포도주가 모자란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저희에게 포도주가 없다’하니 예수께서 가라사대‘여자(女子)여, 나와 무슨 상관(相關)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그 어머니가 하인(下人)들에게 이르되‘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하니라 거기 유대인의 결례(潔禮)를 따라 두세 통(桶) 드는 돌 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항아리에 물을 채우라’하신 즉 아귀까지 채우니 ‘이제는 떠서 연회(宴會)장에게 갖다 주어라’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연회장(宴會長)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新郞)을 불러 말하되‘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醉)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하니라 예수께서 이 처음 표적(表蹟)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行)하여 그 영광(榮光)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그 후에 예수께서 그 어머니와 형제들과 제자들과 함께 가버나움으로 내려가 거기 여러 날 계시지 아니하시니라.
본문 분해
1-2절 예수와 모친과 제자들, 혼인잔치에 청함을 받음
3-4절 마리아, 예수에게 기적 보이기를 청함
5-6절 마리아의 믿음
7-8절 예수, 어머니 마리아의 청을 듣다
9-10절 첫 번째 이적-최상급 포도주
11절 포도주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상징
12절 가버나움에서 때를 기다림
마리아, 예수께 기적 보이기를 청함
우리는 요한복음의 서문이라고 할 수 있는 1장 공부를 마치고 2장 공부에 접어들었습니다.
1장을 간단히 요약한다면 예수에 대한 세례요한의 증거와 시몬 베드로와의 만남, 그리고 나다나엘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증거이라고 할 것입니다.
요한복음을 기록한 사도 요한은 복음서를 편집하면서 정말 깊은 의미가 담긴 편집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기록자 요한은 세례자 요한의 두 번의 직접 증거를 차례대로 편집하고, 그 증거에 대한 답으로 나다나엘에게 고백하게 하므로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 아들-곧, 그리스도란 것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다시 이야기하면 예수가 공생애에 나가기 전에 세례자 요한의 두 번의 직접증거로 성자인 예수 그리스도는 성부인 하나님이 ‘세상 죄(罪)를 제거’하기 위하여 인류에게 보낸 ‘하나님의 어린 양’이란 것을 분명히 하고, 여기에 대하여 나다나엘이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라고 결론을 지었습니다.
이제 2장에서는 공생애를 시작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게 됩니다.
통상 그리스도인들은 마리아와 예수를 육친에서의 모자(母子) 관계로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누구보다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잘 알고 믿는 믿음의 용장(勇壯)입니다. 마리아의 믿음을 이야기하면 ‘믿음의 조상’이라고 하는 아브라함 보다 더욱 높은 믿음의 용장으로 보아 손색이 없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으로부터 아들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받고도 기다리지 못하고 하녀를 통하여 아들을 얻음으로 분쟁을 자초하였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처녀가 아들을 낳는다는 말(눅1:31절)을 듣고도 놀라지 않고 순응하였습니다. 또한 태어날 아기에 대하여
“저가 큰 자(者)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位)를 저에게 주시리니 영원(永遠)히 야곱의 집에 왕(王)노릇 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눅1:32,33).”는 천사(天使) 가브리엘의 말을 듣고도 마리아는 “주(主)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눅1:37).”고 하며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순종입니다. 과연 믿음의 용장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마리아는 곧 이어 세례요한을 잉태한 늙은 친척 엘리사벳을 방문해서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장엄한 노래(눅1:46∼55)가 마리아의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솟아나옵니다.
그 계집종의 비천(卑賤)함을 돌아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萬世)에 나를 복(福)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능(能)하신 이가 큰일을 내게 행하셨으니 그 이름이 거룩하시며,
긍휼(矜恤)하심이 두려워하는 자에게 대대(代代)로 이르는도다.
그의 팔과 힘을 보이사 마음의 생각이 교만(驕慢)한 자들을 흩으셨고,
권세(權勢) 있는 자를 그 위(位)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者)를 높이셨고,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富者)를 공수(空手)로 보내셨도다.
그 종 이스라엘을 도우사 긍휼(矜恤)히 여기시고 기억(記憶)하시되
우리 조상(祖上)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아브라함과 및 그 자손(子孫)에게 영원(永遠)히 하시리로다.
마리아는 위에서 본 것 같이 비록 처녀의 몸이었지만 “주(主)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라고 하면서 처녀로서의 잉태를 감사로 받았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믿음의 용장이라 할 것입니다.
마리아는 예수가 성령으로 잉태되는 날로부터 “지극(至極)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이란 것을 알았습니다. 마리아는 또 누가복음 2장 5∼19절까지의 일들-곧, 천군 천사가 함께 하나님의 아들 탄생을 찬미(讚美)한 사실들을 마음속 깊은 곳에 간직하고 살았습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榮光)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平和)로다”라고 한 천군 천사의 노래 소리와 양치는 목동들의 경배(敬拜)! 멀리서 별을 보고 찾아온 동방박사들의 경배를 마리아는 잊지 않고 “이 모든 말과 행해지는 일들을 마음에 지키어 생각”하였다고 했습니다.
마리아는 또 누가복음 2장 41절부터 48절까지의 일들도 기억하며 살았습니다. 12세 소년 예수는 자기를 찾아온 부모에게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눅2:49) 하고 물었습니다. 이렇듯 예수는 성전(聖殿)을 “자신의 아버지 집”이라고 분명히 말씀을 하며 살았고, 마리아는 육의 아들 예수의 이 모든 것들을 마음속 깊이 간직하며 살았습니다.
마리아는 예수가 30세가 되는 무렵 어느 날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말씀이 육신(肉身)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居)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獨生子)의 영광이요 은혜(恩惠)와 진리(眞理)가 충만(充滿)하더라”
마리아는 세례자 요한의 광야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예수를 가리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세례요한의 증거(證據)가 예수를 세상에 소개하고, 나타나게 한다는 것을 알았던 마리아!
세례요한의 두 번의 직접증거처럼 “예수는 세상 죄를 제거할 하나님의 어린양”임을 알고 있는 마리아였습니다.
예수가 공생애(共生厓)에 나아가는 길목에서 청년 나다나엘은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요1:49) 라고 간파하였는데, 이 말은 지난날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 자신에게 하던 말과 같은 뜻의 말입니다.
“‘보라, 네가 수태(受胎)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저가 큰 자(者)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主)하나님께서 그 조상(祖上) 다웟의 위(位)를 저에게 주시리니’ ‘영원(永遠)히 야곱의 집에 왕(王)노릇 하실 것이요’”(눅1:31∼33)
이 말을 오래 전부터 가슴 속에 간직하고 있던 마리아! 그래서 그녀는 일찍부터 예수 그리스도는 창조주요, 자신은 피조물의 관계로 선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육의 아들 예수에게 청원을 합니다. -이제 당신의 증거를 보일 때가 되었습니다. 나다나엘의 입을 통해 나온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라는 말에 대한 대답을 증거로 보일 때가 되었습니다.-하는 마음으로 마리아가 예수께 청을 하였을 것입니다.
본문 공부(2장)
1,2절“사흘 되던 날에 갈릴리 가나에 혼인(婚姻)이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예수와 그 제자(弟子)들도 혼인에 청함을 받았더니”
“사흘 되던 날에” 이는 앞에 공부했던 1장 49절에서 나다나엘로부터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하는 대답을 들은 후 사흘 되던 날로 생각하면 좋을 것입니다.
“갈릴리 가나에 혼인(婚姻)이 있어” ‘갈릴리’란 지방의 ‘가나’라고 하는 동네에 혼인 잔치가 있었다고 합니다. 우리의 풍습도 혼인잔치에는 친지와 이웃들을 초대하듯이 유대인들도 많은 사람들을 초대하여 여러 날을 즐겼고, 지금도 그런다고 합니다.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예수와 그 제자(弟子)들도 혼인에 청함을 받았더니”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 그리고 그의 제자들도 청함을 받았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기사와 앞으로 공부할 12절의 기사내용을 참작하면 혼인잔치에는 예수와 관계가 있는 사람들 모두가 참석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합니다. 즉 예수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 제자들까지 초대받은 것입니다. 물론, 이야기 구성원으로 연회장과 하인들이 등장합니다.
3절“포도주가 모자란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희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잔칫집에 포도주가 모자란 것을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가 알게 되었습니다. 아직 계속되는 잔치에 포도주가 부족하다면 잔칫집으로서는 여간 곤란한 일이 아닐 것입니다. 마리아는 이 사실을 예수에게 말합니다. 예수라면 능히 부족한 포도주를 해결하리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4절“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女子)여 나와 무슨 상관(相關)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
“여자여”우리는 여기서 예수가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 마리아를 어머니라 부르지 않고 여자라고 부른 대목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관습으로는 자기의 어머니도 높여 부를 때에는 “여자”라고 한다지만, 보통사람이라면 누가 자신의 모친(母親)을 “여자여”라고 하겠습니까? 여기에는 창조자! 우주만물의 주인만이 할 수 있는 말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우주 만물의 주인임을 분명히 하시고 계십니다.
“그 일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여인이여, 잔칫집에 포도주 떨어져 가는 것이 나하고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내가 나설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내가 여러 사람 앞에서 능력을 보일 수는 있지만, 아직은 그 때가 아니라는 대답입니다. 나에게는 나의 때가 따로 있다는 말도 되겠습니다.
5절“그 어머니가 하인(下人)들에게 이르되‘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하니라.”
예수로부터 ‘자신의 때가 아직 이르지 못했다’는 말씀을 들을 때 마리아는 이런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나는 알고 있다오.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란 것을.” 이런 생각도 했을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의 증거와 나다나엘의 찬양을 들은 주인님! 이제 밖으로 나가 능력을 보일 때가 되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아들로서 기적을 보여 주십시오.” 그러면서 하인들에게 지시를 합니다. 그것이 바로 5절입니다. “저분이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인류에게 하늘의 새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오신 예수님이 몸을 의탁했던 육신의 어머니 마리아가 얼마나 위대한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을 공부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소개하는 세례요한을 “여자가 낳은 자 중에서 최고의 사람”으로 이야기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입니다만, 예수 그리스도가 몸을 의탁하신 마리아 또한 인류 역사상 최고의 여성이요, 최고의 믿음의 용장이 아닐 수 없습니다.
6-8절“거기 유대인의 결례(潔禮)를 따라 두세 통(桶) 드는 돌 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항아리에 물을 채우라’이제는 떠서 연회(宴會)장에게‘갖다 주어라’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아직은 자신이 나설 때가 아니지만, 자신을 믿어주는 어머니의 청에 순종하여 예수께서는 표적을 보이시게 됩니다. 우리는 이 대목에서 예수님이 어머니에 대한 효성이 얼마나 지극한가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첫 번째 표적은 참으로 간단합니다. ‘항아리를 깨끗하게 씻었으면 물을 채우라.’ ‘채웠으면 떠서 연회(宴會)장에게 갖다 주어라’ 얼마나 간단한 방법입니까? 물을 채우고 나니 바로 갖다 주라는 지시입니다. ‘물을 채우라’는 말 한 마디에 물이 포도주로 변한 것입니다. 이 세상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으며, 어느 누가 이런 능력을 행할 수 있겠습니까? 오직 창조주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나타내는 표적이요, 그 것을 증명하고 계십니다.
여기서 우리 그리스도인은 깊이 생각 할 점이 있습니다. 그 점은 예수가 첫 번째 표적을 보인 곳이 혼인 잔칫집이라는 것입니다. 혼인은 성인으로서의 인생의 출발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혼인이라는 인생의 새로운 출발점에서 기적을 보이신 데에는 깊은 뜻이 담겨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세례요한의 증거를 받고, 그 증거의 답을 청년 나다나엘로 하게 하신 후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인류를 구원하려는 공생애의 출발점에서 행하신 기적의 포도주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피를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이 포도주는 예수 자신이 인류에게 주는 공생애 출발점에서 어머니와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자신의 능력으로 물을 포도주로 만듦으로 이는 자신에게서 나온 피의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인류 구원의 복음을 전하기 전에 출정식과 같은 혼인잔치에서 예수의 피를 먹고 새 생명의 영으로 거듭난 제자들이 하늘의 복음을 전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물로 만든 ‘포도주’를 예수님의 피로 이야기 한 것은, 너무 비약적인 논리라고 비판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요한복음 6장 35절에서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떡”이라 하시고, 더 나아가 53절에서는 자신의 “살과 피를 먹어야 생명이 있다”고 하십니다. 또한 최후 만찬에서는 잔을 제자들에게 돌리시며 ‘이 잔은 나의 피’라고 하십니다. 이 모든 말씀이 십자가상에서 이루어지고,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와의 “접붙임의 만남”입니다. 자신의 살과 피를 인류에게 접붙임의 참포도나무가지로 들포도나무에게 주시게 되는 십자가의 사건입니다.
9절에서 물로 만든 포도주를 맛본 연회장(宴會長)은 ‘좋은 포도주’라고 감탄을 합니다. 좋은 포도주란 하늘에 속한 새 생명의 피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품속에 있었던 생명’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이제까지 먹었던 포도주가 육을 취하게 하는 것이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만든 포도주는 영혼을 거듭나게 하는 생명의 피라고 하겠습니다.
더욱이 요한복음의 저자는 가나 혼인 잔치에 등장하는 사람들을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마리아와 제자들을 등장시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어떤 이름도 등장시키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연회장과 하인이 등장하지만, 이들은 조연으로 있는 것입니다.
9,10절“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新郞)을 불러 말하되‘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醉)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하니라”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 그 맛에 감탄을 하면서도 그 포도주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지 못하고 신랑을 불러 칭찬을 하고 있습니다. 나중에라도 하인들을 통해서 포도주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알았다면 아마도 연회장은 놀라움을 금치 못 할 것입니다.
11절“예수께서 이 처음 표적(表蹟)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行)하여 그 영광(榮光)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이 처음 표적을 보고, 또는 물로 된 포도주를 먹고 믿음이 생겨 제자들이 예수를 믿었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의미(意味)하는 포도주를 먹게 하여 벌서 그리스도인! 거듭난! 곧 하늘 백성이 된 상태의 제자들이 전도에 임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다음 공부 13-25절에서 (예루살렘 성전 확청(廓淸)을 하시게 됩니다. 예루살렘 성전 확청(廓淸)은 하늘에서 온! 하나님 품속에 계시던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피를 먹고 하늘 백성으로 거듭난 사람들이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
12절“그 후에 예수께서 그 어머니와 형제들과 제자들과 함께 가버나움으로 내려가 거기 여러 날 계시지 아니하시니라.”
앞에서 예수께서는 ‘아직 나의 때가 이르지 못하였다’고 하신 바 있습니다. 그래서 그 때를 기다리기 위하여 혼인 잔칫집에서 나와 어머니와 형제들, 그리고 제자들과 함께 ‘가버나움’이란 곳에 가서 때가 되기까지 기다리게 됩니다. 여기서 그 때란 앞으로 공부할 예루살렘에서의 성전 철거 하실 때를 가리킨다고 할 것입니다.
“거기 여러 날 계시지 아니하시니라.” ‘거기’는 혼인 잔칫집을 말하며, ‘여러 날 계시지 않았다’는 말은 포도주 표적을 보인 후 얼마 안 있어 잔칫집을 나왔다는 말입니다. 당시 유대인들 풍습대로 잔치는 앞으로도 더 열릴 터이지만, 포도주 표적이 소문나기 전에 서둘러 가버나움을 향해 잔칫집을 나오신 것으로 보입니다.
이 달의 좋은 책
불굴의 이상주의자 <밀턴 평전>
지은이 박상익 교수. 저자는 밀턴을 “행동하는 혁명가”로 적고 있다.
기독교계의 어떤 분들은 박상익 교수에 대하여 인문 쪽으로 흐르고 있다고 비판을 하지만, 그는 자신이 선 자리에서 최선의 그리스도인으로 살고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