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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이진구 선생을 생각하다(상)

임중기 2020. 11. 9. 05:49

새 아침을 열며 (31)

 

고 이진구 선생을 생각하다.()

 

이진구 선생은 성서신애 잡지주필이시다.

그런데 1984년인가 전남 광주에 사시며 한국 무교회 원로 선생인 고 박석현 선생이 소천 받았다며 성서신애 잡지에서는 부고와 그분을 그리워하는 추모특집호를 만든다고 원고모집의 광고가 났다. (참고로 성서신애는 일제하의 성서조선이 1927년부터 1942년 사이에 발행되었는데, 성서조선 사건으로 김교신 함석헌 송두용 선생 등 동인이 투옥(投獄) 되었던 사건까지 포함하여 시작하여야 한다. 그리고 해방 후 저자의 개인 전도지인 영단‘ ’숨은 살림‘ ’성서인생‘ ’성서신앙‘ ’성서신애로 이어져 처음 송두용 선생께서 주필, 이진구 선생 주필, 지금은 손현섭 선생 주필로 이어오고 있다. 100년의 기록이라 이웃 일본에도 독자가 많이 있다.)

 

나는 고 박석현 선생에 대하여 잘은 알 수 없었지만, 나의 신앙의 스승이신 고 국희종 선생이 해년 정초에 하신 성서모임에 참석을 하면, 박석현 선생이 오셔서 말씀을 하시곤 하였다. 그러한 관계로 박선생에 대하여 200자 원고지 5-6장의 글을 성서신애지 주필선생께 보냈다. 기사화와 함께 이진구 선생으로부터 앞으로 원고를 써서 보내 달라는 부탁을 하시며. 나의 글이 참신(斬新)하고 깨끗하여 정말 좋다면서 글을 쓰 보라는 권면을 하셨다.

 

나는 이진구 선생께 초등학교도 못 나온 사람입니다. 글 받침도 띄어쓰기도 맞지 않아 쓰지 못합니다. 하였더니 그러한 것은 선생 자신께서 교정을 보아 기사화 할 것이니 글을 쓰 보내라는 말씀이었다. 나 자신도 마음에 남에게 이야기하고 싶은 생각이 솟아나 그것을 글로 써 보내게 되었다. 이진구 선생께서는 교정을 보아 계속 기사화하여 성서신애지에 싫어 주셨다.

이리하여 84년부터 약 10년간 4-50회의 글을 쓰 보내는데, 주필선생께서는 전부 기사화 해 주셨다. 또한 어느 해에는 부활의 계절의 희망이라는 글을 성서신애지 권두언의 글로 사용하시여. 여러 독자 분들에게 이름도 없는 무명의 글을 권두언의 글로 써 주었다고 비판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이토록 이진구 선생은 나를 사랑해 주셨다.

 

이리하여 그것이 임중기의 세상사는 이야기, 작은 목소리란 책으로 (20006월 발간)되었다. 정말 나는 복이 많은 사람이다. 특히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남이 있었다. 주 하나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